영화계의 역사가 또 한 번 바뀌고 있다. '기생충(봉준호 감독)'으로 전 세계를 휩쓴 후 다시 '미나리(정이삭 감독)'가 '기생충' 못지않은 행보를 이어가는 중. 다신 없을 것만 같았던 경이로운 순간이 단 1년 만에 다시 펼쳐지고 있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영화다. '문유랑가보'로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후보에 올라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 감독의 작품이다. 스티븐 연·한예리·윤여정 등 익숙한 얼굴들이 '팀 미나리'로 활약했다. '문라이트'·'노예 12년' 등 명작을 만든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 B가 만들고, '문라이트'·'룸'·'레이디 버드'·'더 랍스터'·'플로리다 프로젝트' 등 미국의 웰메이드작 전문 배급사로 불리는 A24가 투자 배급한다.
골든글로브 입성
오는 28일 개최되는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나리'도 후보작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3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를 주최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의 발표에 따르면, '미나리'는 덴마크의 '어나더 라운드'·프랑스-과테말라 합작 영화인 '라 로로나'·이탈리아의 '라이프 어헤드', 미국-프랑스 합작 영화인 '투 오브 어스'와 경쟁을 벌인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와 함께 미국의 양대 시상식으로 꼽히는 중요한 자리다. 아카데미 수상 확률을 점쳐볼 수 있는 오스카 전초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기생충'이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미나리' 또한 '기생충'과 같이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美 영화계 화제의 중심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을 두고 마냥 축하만 쏟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식 후보 발표 전 '미나리'가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됐다는 소식이 지난해 말 먼저 보도됐는데, 이를 두고 미국 영화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적 행태"라는 분노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골든글로브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미나리'. 이를 통해 현지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홍보 효과를 봤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결과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AMP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적극적인 오스카 캠페인(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홍보)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화제성이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연예 매체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은 "골든글로브의 실수를 오스카가 바로잡고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망했다.
벌써 20관왕 윤여정
'미나리'는 벌써 전 세계 각종 시상식에서 59관왕, 110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대 기록을 세웠다. 영화가 첫 공개된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12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미 비평가위원회(NBR)의 여우조연상·각본상, 미국 온라인 비평가협회의 외국어영화상, 뉴욕 온라인 비평가협회의 작품상·여우조연상·외국어영화상, 노스텍사스 비평가협회의 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외국어영화상까지 연일 트로피를 추가하고 있다. 특히 윤여정이 20개에 달하는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전미 비평가위원회부터 LA·보스턴·노스캐롤라이나·오클라호마·콜럼버스·그레이터 웨스턴 뉴욕·샌디에이고·뮤직시티·샌프란시스코·세인트루이스·노스텍사스·뉴멕시코·캔자스시티·디스커싱필름·뉴욕 온라인·미국 흑인 비평가협회·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골드 리스트 시상식·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까지 대다수의 비평가협회상과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스티븐 연 또한 노스텍사스 비평가협회·덴버 영화제·골드 리스트 시상식까지 연기상으로 3관왕에 올랐고, 한예리도 골드 리스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종 목적지 아카데미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결국 드라마틱한 오스카 레이스다. 쏟아지는 호평과 트로피, 골든글로브에서 만들어진 화제성까지 '미나리'의 아카데미 입성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윤여정이 유력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에 노미네이트될지 큰 관심을 모은다. 화상 대담에 참여하는 등 '미나리' 오스카 캠페인 지원 사격에 나선 봉준호 감독은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에 대해 "윤여정 55년 연기 인생에 역대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유니크하고 강렬한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해왔는데, '미나리'에서도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캐릭터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할머니 상을 비껴가는,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할머니 캐릭터라 통쾌하고 좋았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기생충'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미나리'가 최종 목적지인 아카데미에 이변 없이 도착할 수 있을까. 93회 아카데미상의 후보는 3월 15일 발표되며, 시상식은 4월 25일에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