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구의 토대는 1863년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졌다. 이후 전 세계로 보급된 축구는 진정한 글로벌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축구가 세계화되면서 국가별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관련 문화가 나타났다. 왝스(WAGs, 유명 축구 선수의 아내와 여자 친구를 의미)도 그중 하나이다. Wives And Girlfriends란 영어 표현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 W, A와 G를 따왔고, 복수 명사여서 뒤에 s를 붙여 만들었다. 왝스는 잉글랜드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회 현상이자 축구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과거 잉글랜드의 축구 클럽은 특정 도시나 지역 사람들을 대표했다. 축구 선수도 지역 팬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선수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유명 인사(celebrity)가 된 선수들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주급을 받는다. 특급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도 누린다. 언론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해 수많은 스토리를 생산해내고, 대중은 이를 소재 삼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당연한 말이지만 축구 선수들은 언제나 아내 또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과거 이들의 존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바꾸어 놓은 이가 미남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베컴은 1999년 인기 팝 그룹 스파이스 걸즈의 멤버인 빅토리아 아담스와 결혼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 결혼을 계기로 언론은 축구 선수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아내와 여자친구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왝스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잉글랜드 언론에 전면적으로 부상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아내와 여자친구들은 월드컵 기간 소도시 바덴바덴을 사실상 '점령'했다. 이들은 특급 호텔 숙박비, 쇼핑 등에 100만 파운드(15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이들의 흥청망청한 소비는 곧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스페인의 한 신문은 이들을 가리켜 ‘비자카드를 소지한 훌리건’이라고 묘사했다. 언론은 월드컵 기간 왝스의 동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이들은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었다.
잉글랜드는 2006년 월드컵에서 호화 멤버를 자랑하며 우승에 도전했다. 하지만 8강에서 포르투갈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에 왝스는 대회 기간 대표팀의 집중력을 분산시켰다는 이유로 많은 원망을 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스타플레이어 리오 퍼디난드는 왝스의 행동을 서커스에 비유하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4년 후 잉글랜드는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했다. 카펠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 왝스의 접근을 제한했다. 선수들은 그들의 파트너를 경기 다음 날에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독일에 4-1로 패해 허무하게 탈락했다. 잉글랜드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기록한 3점 차 패배였다. 맨유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선덜랜드 감독을 맡았던 로이 킨도 왝스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킨은 "런던에서 쇼핑하고 싶어 하는 왝스가 북잉글랜드의 선덜랜드 같은 시골 도시로는 가지 말자고 선수들을 꾀는 바람에, 선수 수급이 어렵다"고 불평했다.
왝스의 출현으로 인해 대중이 생각하는 유명 인사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예전에는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주나 명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도 유명 축구 선수 옆에만 있으면 스타가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알렉스 커란은 네일 아티스트(nail artist, 손발〮톱 미용관리사)였다. 커란은 리버풀과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이었던 스티븐 제라드와의 연애와 결혼을 통해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를 론칭했고, 이 제품은 2007년 가장 많이 팔린 향수 중의 하나였다.
커란은 또한 영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 미러와 세계적으로 300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자랑하는 OK! 매거진의 쇼핑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오르기 힘든 이러한 자리를 커란은 단지 제라드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차지하게 된 것이다. 왝스의 이러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현대판 동화가 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2006년 이후 값비싼 디자이너 가방을 들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오렌지색 태닝을 즐기는 왝스의 호화스러운 생활은 영국 젊은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왝스를 동경해 이들의 모습을 흉내 낸 여성들로 거리는 넘쳐난다. TV 방송국은 왝스를 소재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페이스북에는 왝스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그룹까지 생겼다.
아울러 축구선수와 데이트하는 법을 다룬 책이 출판됐다. 왝스를 소재로 한 소설까지 생겼다. 2009년 모어(More) 매거진이 실시한 20대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60%의 응답자가 왝스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왝스는 파티와 쇼핑을 실컷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대표팀 선수로 리버풀에서 활약했던 피터 크라우치의 여자 친구이자 모델인 애비클랜시의 인터뷰는 이러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삶의 목표로 “축구 선수와 결혼해, 평생 쇼핑하며 즐기고 싶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