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은 문제점을 '진단'했다. 하지만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흥국생명 브랜드와 어울리지 않게 '리스크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침몰을 자초했다.
설 연휴 전부터, 그리고 설 연휴 끝난 현재까지 흥국생명은 선수단 내부 갈등과 소속 선수의 과거 학교 폭력(학폭)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프로배구가 개막하기 전만 하더라도 흥국생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현대건설 세터 이다영을 FA(자유계약선수) 영입,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한 팀에서 뛰게 됐다. 곧이어 '세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까지 가세했다. 여자배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세 선수가 모였다.
흥국생명은 슈퍼 히어로 영화 '어벤저스'에 빗댄 '흥벤저스'로 통했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 '무패 우승' 등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다. 개막 10연승,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14연승을 내달리며 거침없는 행진을 이어갔다. 3라운드까지 '시청률 톱5'를 독식해 성적과 인기를 싹쓸이했다.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여자 배구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지금은 정반대 입장이다.
선수단 내부 불화설이 불거졌다. 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해당 선수는 "내부의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내부의 문제는 어느 팀이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한 선수는 지난 7일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과거 학교 폭력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 10일 두 선수는 자필 사과문을 게재, 재학 시절 잘못한 일을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흥국생명 역시 '학폭' 사안에 대해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두 선수가 프로에 입단하기 훨씬 전에 벌어진 것으로, 구단이 자세히 인지했을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구단의 미온적인 대처 속에 추가 피해자가 나왔다. 13일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폭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밝힌 이는 "징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한다는 데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조용히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는 거라면 그때의 일들이 하나씩 더 올라오게 될 겁니다"라고 밝혔다. 구단은 앞서 "이재영과 이다영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징계를 유보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선수에 대해 흥국생명은 향후 경기 출장 여부나 징계 등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학폭' 관련 징계 규정이 없고, 아마추어 배구를 소관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 징계는 대표팀 등에 적용된다. 앞서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마추어 시절 '학폭' 사안에 대해서도 구단의 자체 징계가 이뤄졌다. 결국 '학폭' 논란에 대해선 구단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흥국생명이 화를 키운 꼴이다. 모든 건 선수단 내부 불화설에서 시작했다. 구단과 코치진에는 이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다. 개성 강한, 여자 배구 최고 인기 선수를 한 팀에 보유하면서 성적만 좇고, 내부 갈등을 모른 척하면서 일이 점차 커졌다. 선수에게 해명을 맡겼을 뿐 구단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1위 질주'라는 성과에 취해 불협화음을 쉬쉬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선수단 갈등은 코트에서 쉽게 목격됐다. 해당 선수는 코트에서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선수들의 갈등은 팀 분위기 악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더 큰 문제가 터졌고, 성적도 추락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14일 현재 승점 50(17승 6패)으로 개막 후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위 GS칼텍스(승점 45)가 거세게 쫓는 중이다.
이재영-이다영은 잔여 경기 출장이 불투명하다.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정규시즌 남은 경기는 7경기. 가장 최근 경기였던 지난 11일 이재영-이다영이 경기장에도 나오지 않은 가운데, 세트스코어 0-3으로 졌다. 내용은 더욱 참담했다. 16-25, 12-25, 14-25로 완패했다. 경기 시간은 고작 1시간 8분, 올 시즌 최소 경기 시간 패배였다.
사태 수습을 위한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만이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그동안 흥국생명을 응원해온 팬들의 상처받은 팬심을 달래는 것도 중요한 '보상'이다. 여기는 '보장 기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