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포워드 허일영(36)이 웃으며 되물었다. 강을준 오리온 감독이 허일영을 “소리 없이 강한 ‘미풍 같은 남자’”라고 표현했다. 미풍도 오래 맞으면 감기에 걸리듯, 허일영이 잔잔해도 꾸준하게 활약한다는 칭찬이다.
허일영은 “감독님이 ‘미풍아’라고 부른다. ‘계속 불어 달라’고도 하신다. 감독님은 비유의 달인”이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허일영 쪽으로 대형 선풍기를 틀었다. 약하게 미풍으로. 허일영은 “미풍도 계속 맞으니, 진짜로 감기에 걸릴 것 같다”며 웃었다.
원조 ‘소리 없이 강한 남자’는 전주 KCC에서 뛰었던 추승균(은퇴)이다. 허일영은 “신인 때 추승균 선배를 상대했는데, 소리 없이 15~20점씩 넣고, 수비도 철벽이었다. 나를 그런 분에 비교해주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했다.
최근 3경기만 놓고 보면 허일영은 ‘소리 많이 나는 강풍’이다. 평균 17.3점, 5.3리바운드로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4일 서울 SK전에서 3점슛 3개 포함 21점을 몰아쳤다. 지난 시즌 꼴찌 오리온은 올 시즌 3위(26승 18패)다. 1위 전주 KCC와 3경기 차, 2위 울산 현대모비스와 1경기 차다. 허일영은 “‘나이 먹으니 안된다. 퇴보했다’는 소리를 들어 자존심 상했다. ‘나라고 던지는 대로 들어가겠어’라고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오히려 더 잘 들어갔다”고 전했다.
헤어밴드를 한 허일영은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뛴다. 코로나19로 지난해 1월 리그가 중단됐을 때 발목 수술을 받았고, 머리칼은 그때부터 길렀다. 팀 동료 이대성(31)도 허일영을 따라 장발이다. 허일영은 “식당에서 고개 숙인 채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여자인 줄 안다. 긴 머리를 감아보니 아침마다 머리 긴 여성 분들 고충을 알 것 같다”며 웃었다.
허일영의 이름 한자 뜻은 ‘편안한 날(日寧)’이다. 별명은 원래 ‘허텐’이었다. ‘일(1)’과 ‘영(0)’이라서 ‘텐(10)’이 된 거다. ‘허물선’이라는 별명도 있다. 개인 통산 3점슛 600개를 돌파했는데, 슛의 궤적이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처럼 포물선을 그린다고 해서 얻었다. 왼손 슈터인 허일영은 팔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서 쏜다. 발사각이 50도가 넘는다. 허일영은 “고교 때 센터였다가 대학 가서 슈터로 바꿨다. 상대 블록슛을 피하기 위해 타점을 높였다. 몇몇 선수는 따라 했다가 슛 폼이 망가졌다. 이재도(KGC인삼공사)도 그중 하나인데, 지금은 나보다 더 잘 넣는다”고 말했다.
원주 나래(DB 전신) 시절 정인교처럼 허일영도 ‘사랑의 3점 슈터’라 불린다. 올 시즌 3점슛을 넣을 때마다 3만원씩 적립해서 한 병원의 난치병 어린이를 후원한다. 지금까지 50개를 성공해 150만원을 적립했다. 2018년 아이 돌잔치 때 받은 축하금도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썼다. 지난해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니폼을 팔아 수익금을 기부했다. 아들(성혁·4)과 딸(태린·3)을 둔 그는 “TV에서 어려운 어린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큰 금액은 아니어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대성이가 100개를 채우도록 패스해준다고 했는데, 50개밖에 못 넣었다. 사비로 채워서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일영은 2009년부터 군 복무 기간(상무)을 빼고 오리온에서 뛴다. 11시즌째다. 그는 “아이들도 포카칩, 꼬북칩 등 오리온 제품을 좋아한다”며 웃었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 동기 중에선 김강선(오리온)을 빼고는 거의 다 은퇴했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그는 “가능하면 40세까지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리온은 2015~16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꼴찌였다. 허일영은 “밑바닥부터 최고 위의 끝까지 다 가봤다. 올 시즌 목표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사실 6위 안에만 들면 순위는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농구에서 4위 용인 삼성이 업셋(하위팀의 반란)하지 않았나. 우리도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치고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