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시즌 K리그에서 초반 이슈를 선점한 주인공이 있다. 다름아닌 기성용(32·FC서울)이다.
개막 직전 ‘학폭 스캔들’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경기력에도 영향이 가나 싶었는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피치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올 시즌 리그 6경기에서 벌써 3골. 그것도 3경기 연속골의 무서운 상승세다.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득점 레이스에서도 1위 일류첸코(전북·4골)와 1골 차의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기성용이 이렇게 골을 잘 넣는 선수였나? 하는 의문이 드는 축구팬도 있을 것이다. 기성용의 초반 득점 행진의 원인은 그의 위치가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확연하게 앞으로 빠진 건 아니지만 기성용은 올 시즌 서울에서 ‘한 발짝 정도’ 공격적인 위치로 전진했다.
과거 2007~2008년 즈음 기성용이 K리그에서 뛸 때 경기 영상을 보면, 그가 공격 진영 박스 바로 앞까지 자주 전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에 진출한 이후 기성용의 포지션은 점차 뒤쪽으로 빠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뀌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워낙 압박이 거세기도 하고, 팀 내에서도 피지컬이 좋은 선수가 많아서 굳이 기성용이 앞으로 전진해서 동료들과 활동 반경이 겹칠 이유가 없었다.
지난 시즌 도중 기성용이 서울로 복귀했을 때, 당시는 전술상의 위치가 문제가 아니라 몸이 문제였다. 실전 감각도 떨어진 상태였고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결국 부상을 당했다.
기성용이 올 시즌 초반 대단히 돋보이는 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꼽아볼 수 있다.
먼저 동계 훈련 성과다. 지난 겨울, 서울 외의 다른 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을 정도로 기성용이 성공적인 동계 훈련을 했다. 서울과 연습 경기를 한 팀들 사이에서 기성용에 대해 ‘전성기 시절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기성용이 시즌 개막 직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해 택배 배송 다시 합니다. 기다리세요”라고 올린 것도 이러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택배 배송’은 기성용의 전매특허인 정확한 장거리 패스를 가리킨다.
그리고 두 번째, 앞서 말한 위치 변경이다.
기성용은 지난 21일 수원전에서 골을 넣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박스 투 박스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박스 투 박스’란 한쪽 박스에서 상대편 박스까지 광범위하게 움직이는 선수를 가리킨다.
최근 몇 년 간의 기성용이라면 박스 투 박스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유럽 무대에 비해 K리그에서는 보다 공격적으로 나서는 게 기성용에게 더 잘 맞는 옷이다. 여기에 올 시즌 몸 상태가 좋은데다 동료 미드필더 오스마르와 호흡이 최상이다.
서울은 미드필더 오스마르가 왼발잡이, 기성용이 오른발잡이라 둘의 균형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잘 커버해주면서 서울의 중원을 든든하게 만들고 있다.
타 팀에서 기성용을 껄끄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성용이 드리블이 빠르거나 발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아님에도 ‘정말 막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는 기성용의 패스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공을 잡고 있는 기성용에게 잘못 덤벼들었다가는 질 좋은 패스가 나간다. 또 기성용을 막기 위해 수비가 여러 명 달려들면 오스마르가 비어있게 되어 섣불리 덤비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새삼스럽지만 기성용의 멘털리티가 돋보인다. 학폭 의혹으로 위축될 법도 한데, 오히려 위기에 닥칠수록 집중력이나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해지는 선수라는 것을 이번에 새삼 확인했다.
FC서울은 지난 시즌 파이널B 최종순위 9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 시즌 4승2패로 2위에 올라 있고, 달라진 경기 내용으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 중심에는 기성용이 있다.
기성용과 오스마르가 버틴 서울의 중원은 상위권의 타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다만 서울은외국인 공격수가 없고, 센터백이 약한 게 여전히 해결 안 된 단점이다. 만일 기성용이 상대팀의 집중 견제를 당하거나 기성용-오스마르 중 한 명이 경고누적 혹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다면 서울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올 시즌 서울이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