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같았다. 자체 최고 시청률 6.0%(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종영한 JTBC 드라마 '괴물'이 차원 다른 심리 추적 스릴러를 완성했다. 참혹한 현실을 온 몸으로 버텨내며 치열하게 달려온 신하균(이동식) 여진구(한주원)는 괴물을 잡고 모든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괴물을 낚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잘못까지 바로잡는 선택은 깊은 울림을 안겼다. 지옥 같던 나날을 곱씹으며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두 사람, 어디선가 또 다른 비극을 견뎌내고 있을 남겨진 자들을 조명하는 엔딩은 가장 '괴물'다웠다. '누가 범인인가'에 머물지 않고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나' 남겨진 피해자 가족들은 어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지 또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내밀하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괴물'
'신'이라 불린 신하균… 그리고 여진구
두 사람은 역시 달랐다. 변화무쌍한 관계와 복잡다단한 서사를 치밀하게 그려내며 이제껏 본 적 없는 레전드 콤비를 탄생시켰다. 경계와 도발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심리전을 펼친 내공 연기는 서스펜스를 극대화했고 지독하리만치 처절한 진실 추적은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반전 명장면을 쏟아냈다. 두 '연기 괴물'의 신들린 시너지는 심리추적 스릴러의 정수를 선보였다. 신하균은 혼란·분노·슬픔·광기를 오가는 이동식의 감정 변화를 완벽, 그 이상으로 그려냈다. 여진구의 진가도 빛났다. 엘리트 형사 한주원의 변화와 성장을 진폭 큰 연기로 그려내며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두 남자의 같은 서사는 드라마의 핵심이자 기존 장르물의 틀을 깨는 확실한 차별점이었다. 동생 문주연(이유연)의 죽음 이후 삶 자체가 고통이 된 신하균과 최진호(한기환)의 실체를 마주하고 절망과 죄책감에 몸부림친 여진구, 참혹한 비극은 이들을 지독하게 옭아맸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엇갈린 운명에도 어떻게든 비극을 끊어내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두 남자의 처절한 공조는 그래서 더 진한 여운을 안겼다.
묵직한 화두… 그리고 인간의 다면성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다면성을 집요하게 쫓으며 '괴물은 누구인가. 너인가, 나인가, 우리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21년에 걸친 사건에는 여러 인물이 얽혀 있었고 비극은 이들의 욕망과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자들은 '괴물' 그 자체였다. 단순 범인 잡기가 아닌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욕망과 심리를 중심에 둔 전개는 그래서 더욱 예측 불가했다. 매회 판을 뒤집는 반전 역시 인간 내면에 숨겨진 '괴물성'에 있었다.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이중성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자극적인 사건 묘사보다도 잔혹했고 메시지는 날카로웠다. 이런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치밀하게 포착해낸 심나연 감독의 연출은 서스펜스를 배가시켰다. 심장을 조이는 전개 속에서도 '괴물' 특유의 비극 서사, 인물의 감정선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며 심리 추적 스릴러의 묘미를 세공했다. 복선과 반전의 미학을 절묘하게 설계한 전개, 인물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밀도 높은 서사를 이끌어간 김수진 작가에 대한 찬사도 쏟아졌다. 복잡한 심리를 내밀하게 그려낸 배우들의 힘을 엄청났다. 배우들의 열연에 방점을 찍은 음악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참혹한 진실… 그리고 남은 자들을 조명
여타 장르물과 결을 달리했다. 범인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신하균·여진구의 극단적 상황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들여다 봤다. 신하균의 인생은 동생 실종 이후 지옥과도 같았다. 비극은 길고도 잔혹했다. 실종된 어머니의 시신만이라도 찾고 싶다며 10년을 헤맨 최성은(유재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는 평생 혼자 끌어안은 슬픔이 어느 순간 넘쳐서 미친 짓을 벌이기 시작한 거야"라는 최성은의 말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아버지의 악행을 밝혀내고도 죄책감을 씻어내지 못한 여진구의 모습도 여운을 안겼다. 두 남자의 진실 추적은 오랜 악의 연대기, 비극을 끝내기 위한 처절한 사투였다. 더 나아가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위로였다. 엘리트 경찰의 삶을 버린 여진구는 실종자들을 찾아 나섰다. 자신도 할 일이 있어 다행이라는 그와 그런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는 신하균의 엔딩은 '괴물'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곱씹게 하며 뭉클함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