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두산 감독은 지난 16일 LG전 0-1 패배 후 선수단을 불러모았다. "너희는 백업 선수가 아니다. 경기에 나가면 다 같은 주전이다. 주변에서 '너는 포지션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백업이라고 답할 거야? 어떻게든 잘할 생각을 하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부터 카리스마를 뿜었던 사령탑의 한 마디는 신예 선수단의 승부욕을 일깨웠다.
김태형 감독은 "백업이라고 선수들을 봐주는 건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의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주전 선수들이 줄부상으로 이탈했다'는 핑계 대지 않고, 두산이 자랑하는 '화수분 야구'의 저력을 선보이겠다는 계산이었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두산은 올해는 정말 '위기 신호'가 들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오재일(삼성)과 최주환(SSG)가 FA(자유계약선수)로 팀을 떠나면서 팀 전력이 약화했다. 외국인 투수도 예년보다 기량이 좋지 않다.
가뜩이나 주전 자원이 계속 빠져나가는데, 최근에는 부상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베테랑 내야수 김재호(출산 휴가)와 오재원(흉통)이 잠시 이탈했다. LG와 지난 주말 3연전에서는 정수빈(내복사근)과 박세혁(안와골절)이 다쳤다. 특히 주전 포수 박세혁은 지난 16일 잠실 LG전에서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하다. 일단 19일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센터라인이 순식간에 와해했다.
18일 두산 엔트리를 보면 투타에서 100경기 이하 출전 선수가 무려 12명 포함되어 있다. 전체 엔트리(28명)의 약 절반(43%) 가까이 된다. 선발 투수 최원준과 필승조 이승진을 제외하면 박종기·김민규·조제영(이상 투수) 장승현·장규빈(이상 포수) 박지훈·안재석·권민석·황경태는 백업에 속한다. 팀 전력 약화를 의미한다.
결국 이들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김태형 감독은 시즌 초반 찾아온 위기를 타개하고자 선수단을 소집해 동기부여를 전달했다.
김태형 감독은 "백업이 경기에 나가서 '이 정도 했으면 잘했다'라고 생각해선 절대 안 된다. 자신의 활약에 만족하고 경기 종료 후 웃으면서 샤워해서도 안 된다"라며 "선배들이 자리를 비워 기회가 오면 잡아야지"라고 강조했다.
김태형 감독의 소집 이후 두산은 '잠실 라이벌' LG와 두 경기를 모두 잡았다. 17일 3-1로 이겼고, 18일 시즌 첫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하며 9-1 대승을 거뒀다. 두산은 최근 2연속 루징 시리즈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LG에는 개막 후 네 번째 3연전에서 시즌 처음으로 열세 시리즈의 아픔을 선사했다. 19일 박계범-안재석-장승현으로 이어진 7~9번 하위 타순은 1안타씩 뽑아내며 선발 전원 안타 달성에 일조했다. 장승현은 박세혁이 빠진 후 19이닝 동안 LG 타선을 2점으로 꽁꽁 묶었다.
선수들 앞에서 무서운 사령탑이지만 뒤에선 따뜻한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김태형 감독은 17일 승리 뒤 "8회말 결정적 수비를 펼친 조수행, 경기 내내 안정감을 보여준 안재석을 칭찬해주고 싶다"라고 했다. 18일 승리 뒤엔 "투수 리드를 침착하게 이끌어준 포수 장승현과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한 타자를 칭찬하고 싶다"라고 했다. 2021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안재석에 대해선 "고졸 신인 내야수 중에서는 톱이라고 본다.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