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과 싸우며 자신만의 피칭을 선보이고 있는 삼성 언더핸드 김대우. 삼성 제공
"타격은 타이밍, 피칭은 그 타이밍을 무너뜨리는 거다."
메이저리그(MLB) 통산 363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 워렌 스판이 남긴 명언이다. 스판은 무려 마흔네 살까지 MLB에서 뛰었다. '롱런'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가 끊임없는 변화였다. 선수 생활 막판 떨어진 구속을 만회하기 위해 그 당시 리그에서 생소했던 스크루볼을 장착했다. 구속에 대한 욕심보다 로케이션을 달리하며 버텼다. 특유의 하이키킹 동작을 더해 타자가 원하는 '타격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도 '타이밍'과 싸우는 투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삼성 언더핸드스로 김대우(33)다. 김대우는 언뜻 강점을 찾기 힘든 투수다. 마운드 위에서 힘껏 공을 던져도 웬만한 투수들의 변화구 수준에 머문다. 지난 20일 대구 SSG전에서 기록한 직구 최고구속은 시속 133㎞. 하지만 이 공이 타자에게 통한다. 올 시즌 21일까지 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57(7이닝 2실점)을 기록 중이다. 피안타율이 0.170, 이닝당 출루허용(WHIP)도 0.57로 낮다. 추격조 역할을 잘 해낸다.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김대우는 "난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대단한 구종이 없다. 아무래도 투수는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자들이 투수의 타이밍을 가지고 좋은 타구를 만들 듯이 투수는 그 타이밍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 많은 변화구를 던지고 템포나 밸런스에 신경 쓴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최대한 힘을 빼 던진다. 전광판에 찍히는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다. 오로지 생각하는 건 18.44m 앞에 있는 타자와의 '타이밍'이다.
언더핸드는 도루에 취약할 수 밖에 없지만, 김대우는 끊임없는 연구로 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삼성 제공 김대우의 흥미로운 기록 중 하나는 도루허용이다. 언더핸드는 보통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투구 동작으로 인해 도루에 취약하다. 같은 언더핸드 박종훈(SSG)이 매년 도루허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바로 이 이유다. 박종훈은 지난해 도루 44개를 허용해 압도적인 리그 1위(2위 한화 김민우·26개)였다. 반면 김대우는 마운드 위에서 한결 편안하다. 지난 시즌에는 도루를 3개 허용했지만 잡아낸 게 6개로 더 많다. 올 시즌에는 아직 도루를 시도한 주자가 없다. 도루는 포수 송구 못지않게 투수의 역할도 크다. 주자에 투구 폼을 읽히지 않고 얼마나 간결하게 투구하느냐가 포인트다.
김대우는 끊임없는 연구로 약점을 극복했다. 그는 "퀵모션(슬라이드 스텝)을 빨리 하고 주자가 있을 때는 같은 템포로 공을 안 던지려고 한다"며 "주자들은 보통 변화구 타이밍을 노리거나 같은 템포로 공을 던질 때 뛴다. 그래서 뛸 수 있는 타이밍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공을 오래 잡고 있거나 짧게 잡는 등의 변화를 준다"고 말했다. 일정한 패턴으로 투구하는 게 아니라 인터벌을 조절하면서 주자를 견제한다. 김대우는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있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렵지만, 더 즐겁기도 하다"며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 된 것 같다"고 웃었다.
김대우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지명(당시 넥센)을 받았다. 입단 후 줄곧 주연보다 '조연'에 가까운 야구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올 시즌엔 다르다. 허삼영 감독은 김대우를 향해 "마당쇠처럼 불펜에서 긴 이닝을 끊어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성적 혜택이 크지 않은 보직인데도 팀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너무 잘해주고 있다. 고마운 선수"라고 말한다.
느린 구속, 투구 폼의 취약점. 두 가지를 모두 잡기 위한 김대우의 '타이밍' 싸움이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