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재건축 시장이 꿈틀거리면서 각 건설사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압구정과 여의도·성수·목동·용산까지 정부 규제로 막혔던 재건축 사업이 오세훈 서울 시장과 함께 활로를 찾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가장 관심이 큰 지역은 단연 압구정지구, 그중에서도 압구정현대아파트(이하 압구정 현대)다. 재건축이 이뤄질 경우 반포에 이어 최대 부촌으로 떠오를 수 있고, 수주 규모 또한 크다.
대형 건설사들은 벌써 핫한 압구정지구를 잡기 위해 수주 채비를 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이하 현대산업개발) 압구정 현대를 지은 건설사는 자신들이라며 복잡하게 얽힌 양사의 역사까지 거론하고 있다.
압구정지구가 뭐길래
서울시는 지난 21일 압구정아파트지구(24개 단지)와 여의도아파트지구 및 인근단지(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일대(총 4.57㎢)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향후 1년 간 이 일대 주택을 매매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없이 토지거래계약 체결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토지가격 30% 상당 금액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주거용 토지는 2년간 실거주용으로만 이용 가능하며 매매·임대가 금지된다.
거래를 제한하는 규제안이 발표됐는데도 이 일대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박원순 전 서울 시장 아래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이 토지거래허가지역 지정과 함께 비로소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압구정지구는 오랜 시간 기다렸던 재건축 고삐를 다시 쥐는 분위기다. 앞서 서울시는 2016년 압구정과 청담 일대 1만 세대 이상의 24개 단지를 6개 구역으로 나누는 압구정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 급등에 부담을 느낀 서울시는 5년째 압구정 지구단위계획을 지정 고시하지 않았다.
압구정지구에서도 '알짜'로 평가받는 곳은 압구정 3구역이다. 이 구역은 현대 1∼7차와 10·13·14차, 대림빌라트 등 총 4065가구 규모로 압구정 특별계획구역 6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압구정동 재건축 구역 중 최대 규모이자 랜드마크인 압구정 현대의 상당 부분을 품고 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압구정 3구역은 지난 19일 강남구청으로부터 재건축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압구정 3구역의 조합 설립은 2018년 9월 추진위원회 설립 이후 2년 7개월 만이다.
압구정 3구역은 최근 실거래가 80억원을 기록해 관심을 끈 현대 7차가 속한 구역이기도 하다. 앞서 현대 7차 전용 245㎡는 지난 5일 8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지난해 8월 같은 면적이 65억원에 거래된 이후 무려 15억원(23.1%)이나 뛴 가격이다. 서울시는 해당 주택 매매를 이상 거래로 보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압구정 현대를 잡아라
압구정 현대는 재건축 이후 반포를 넘어 서울 최고가 아파트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재건축까지 수년 이상 내다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이 지역 수주를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 분위기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22일 통화에서 "압구정 현대 재건축은 무조건 현대가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부터 이곳은 현대가 수주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고 힘줘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한민국 서울 강남 요지에 있는 압구정 현대는 상징성이 있다. 또 현재 가장 이슈인 지역"이라며 "압구정 현대 지역 수주에 성공해 반포부터 한남을 선으로 그어 현대를 상징하는 'H벨트'로 묶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6월 한남뉴타운 재개발사업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을 수주하고 ‘디에이치’ 브랜드를 적용했다. 압구정지구까지 수주하면 ‘반포-압구정-한남’을 잇는 한강 변 '디에이치 라인'을 완성하게 된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타 건설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건설사 측은 "당연히 큰 관심이 있고 수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나같이 압구정 현대가 가진 상징성과 향후 가치, 사업적 규모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압구정 현대는 1~14차까지 6355세대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압구정 2~3구역만 품에 안아도 강남 요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초대형 사업을 수주한 셈이라고 평가한다.
오세훈 시장은 주거용 건물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한 35층 룰 완화를 시사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4년 서울시의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도입하며 만든 35층 룰은 압구정동 현대,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규제안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오 시장 취임과 함께 이제는 더욱 속도를 낼 여건이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물산 측은 "압구정 현대야 워낙 좋은 입지다. 사업성도 좋고 강남 요지에 있기 때문에 (수주에 성공할 경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 역시 "생각할 것도 없이 적극적으로 수주에 뛰어들 것이다. 압구정 현대라는 상징성, 사업 규모와 입지까지 최고 수준"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압구정 현대는 대한민국 부촌의 상징"이라며 "아파트 브랜드 인지나 선호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울 주요 지역에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프리미엄 아파트라는 이미지와 광고 효과를 거둔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vs 현대산업개발 자존심 경쟁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은 대형 건설사 중에서도 압구정 현대 재건축 수주에 사활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는 압구정 현대가 서로 자신들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 중이다. 양사의 복잡한 사사 때문이다.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은 원래 한배를 타고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이 한국도시개발이란 이름으로 1976년 현대건설 내 주택사업본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압구정 현대도 당시에 지어졌다. 그러나 1999년 이른바 '왕자의 난' 때 현대산업개발이 분리됐고, 현대건설과 독립된 길을 걸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압구정 현대를 누가 지었나. 바로 현대건설이다. 재건축은 우리가 무조건 맡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압구정 현대를 대부분 지은 곳은 자신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1999년 이전에는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현대그룹 안에 함께 있었다. 주택은 현대산업개발이 주력 부분이었다. 이는 사사에도 나와 있는 것"이라며 "압구정 현대 1~4차는 우리가 현대건설 안에 있을 때 지었고 나머지 5~14차까지는 현대건설에서 독립한 현대산업개발이 지었다. 대부분 우리가 지은 것이다"고 쐐기를 박았다.
벌써 각을 세우는 양사를 바라보는 타 건설사들의 '관전평'과 은근한 '견제'도 볼만하다.
비공개를 요청한 A 건설사 관계자는 "압구정 현대는 건설사라면 다들 원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은 엄청나게 서로 신경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르긴 몰라도 입찰이 시작되면 두 회사 모두 고 정주영 선대 회장의 영상부터 틀고 시작하지 않겠나 싶다. 서로 (적자를 자처하며)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고 했다.
아파트 건설 부분은 현대건설보다 현대산업개발이 우위에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B 건설사 관계자는 "남의 회사 복잡한 역사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현대산업개발이 분사해 나올 때 아파트 시공권 등을 들고 나왔던 것으로 안다. 사실 현대건설 정도 되면 국내보다 해외 건설 사업을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A사 관계자 역시 "(회사 역사로 따지고 보면) 현대산업개발이 그래도 주택부문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시공의 다양성 측면에서 현대건설은 강남 지역 수주를 멈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C 건설사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H라인'을 말하는데…. 그 지역 아파트가 한 건설사로 도배되면 과연 옳은 일일까. 감정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정부나 서울시에서 강남 등 수도권 요지를 특정 건설사가 모두 독식 수주하는 분위기를 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