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시국에도 25일(현지시간) 미국 LA 유니온 스테이션과 돌비 극장 등에서 대면 형식으로 치러진 가운데, '미나리(정이삭 감독)' 윤여정은 끝내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이날 시상자는 전년도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브래드 피트가 나서 의미를 더했다. 브래드 피트는 '미나리'의 제작사 대표로 남다른 인연이 있다. 브래드 피트가 호명한 윤여정이라는 이름은 전율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기 충분했다.
시상자로 나온 브래드 피트는 "영화에 대한 내 사랑은 우리 동네 드라이브 극장에서 시작됐다. 나는 고질라를 너무 좋아했는데 오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후보들도 어린 나이부터 영화를 사랑했다"고 운을 뗐다.
브래드 피트는 윤여정을 가장 먼저 언급하며 윤여정이 좋아한 영화들을 나열했고, 이어 같은 부문 후보에 오른 아만다 사이프리드, 올리비아 콜맨, 글렌 클로즈, 마리아 바카로바가 애정한 영화도 언급했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 브래드 피트가 외친 이름은 '여정 윤'이었다.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윤여정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오스카를 손에 쥐었다.
"브래드 피트 나이스 투 미츄!"라고 인사를 건넨 윤여정은 "드디어 만나 뵙게 됐다. 우리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냐"며 여유로운 농을 친 후 "내 이름은 윤여정이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왔다. 유럽 분들은 많이 '여여'라고 하거나 그냥 '정'이라고들 불렀는데 여러분 모두 용서해드리겠다"고 오프닝부터 센스 넘치는 입담을 뽐냈다.
윤여정은 "아시아권에 살면서 보통은 TV로 시상식을 지켜봤다. 근데 오늘은 직접 이 자리에 오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잠시 정신을 가다듬도록 해보겠다. 아카데미 관계자 분들께 싶은 감사 드린다. 표를 던져주신 모든 분들께도 너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또 "그리고 원더풀 미나리 패밀리! 스티븐, 아이작, 예리, 노엘, 우리 모두 영화를 찍으면서 가족이 되었다. 무엇보다 정이삭 감독님이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감사하다. 감독니께서는 우리의 선장이자 또 저의 감독님이다"고 콕 집어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와 함께 윤여정은 "제가 사실 경쟁을 믿지는 않는다. 어떻게 내가 글렌 클로즈와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나. 후보 다섯 분 모두, 우리 모두 다 다른 역할에서 잘 해냈다. 나는 운이 좀 더 좋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미국 분들이 한국 배우들에게 굉장히, 특히 환대를 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윤여정은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 두 아들이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아이들의 잔소리 덕분에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며 "김기영 감독님께도 감사드린다. 내 첫 감독님이셨다. 첫 영화를 함께 만드셨는데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나의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이다"고 의미있는 한 마디도 남겼다.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가 서 있는 무대 아래로 내려오며 "와우!"라는 입모양을 보이며 직접 받은 수상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러블리함까지 배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