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마지막 시즌이던 지난해 추신수의 주력은 평균 이하였다. MLB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추신수의 스프린트 스피드는 초당 25.9피트(7.89m)로 최소 50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 중 300위권 밖이었다. 스프린트 스피드는 초당 27피트가 리그 평균. 초당 30피트면 최상위다. 반면 초당 23피트면 최악이다. 추신수의 기록은 하위 그룹에 가까웠다. 초당 26.6피트(8.1m)를 기록한 2019년과 비교해도 수치가 크게 떨어졌다.
스피드 스코어(Spd)도 마찬가지였다. 스피드 스코어는 세이버매트릭스 전문가 빌 제임스가 고안한 주루 평가 지표다. 도루 시도와 성공률, 3루타 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산출한다. 4.5가 리그 평균. 7 이상이면 S급이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추신수의 스피드 스코어는 4.2. 2019년 5.2에서 하락했다. 주루 득점 기여도인 BsR(Base running runs above average)까지 3.8에서 0.6으로 '급전직하'했다. 불혹을 앞둔 나이를 고려하면 주루 기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MLB 정규시즌에서 도루 20개 이상을 네 번(2009, 2010, 2012, 2013년)이나 달성한 주력이 더는 아니었다.
지난 3월 추신수가 SSG 선수단에 합류한 뒤 김원형 감독이 그에게 "(출루했을 때) 뛰지 말라"고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KBO리그 첫 시즌인 만큼 의욕을 앞세우다 자칫 부상을 입을 수 있어서다. 추신수는 2016년 4월 종아리 부상, 그해 6월 왼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했다. 지난 시즌에도 종아리 상태가 좋지 않아 연속 결장한 이력이 있다. SSG 코칭스태프는 추신수가 주루를 신경 쓰는 것보다 '타석'에만 집중해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정규시즌이 시작되니 '추추 트레인'이 달린다. 추신수는 26일까지 18경기에서 도루 6개를 기록해 이 부문 리그 3위(1위 키움 김혜성·10개)다. 성공률 100%. 지난해 도루왕 심우준(KT·성공 2개, 실패 1개), 2015년부터 4년 연속 도루왕에 오른 박해민(삼성·성공 5개, 실패 3개)보다 도루가 더 많고, 순도도 높다.
인상적인 장면도 쌓여간다. 지난 14일 인천 NC전에서 시즌 도루 저지율이 42.9%인 김태군을 뚫어냈다. 22일 대구 삼성전에선 국가대표 출신 포수 강민호를 상대로 한 경기 도루 2개를 추가했다. 24일 고척 키움전에서는 2루에서 1루 주자 최정과 더블 스틸을 시도해 3루를 훔쳤다. 상대 배터리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결정한다. 김원형 감독은 "(벤치에선) 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가 뛰는 거다. 타이밍을 잘 잡는다. 몸만 좋으면 더 뛰고 싶은데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뛸 수 있는 선수에게는 그린라이트를 주지만, 신수는 시즌 초반 다리에 피로와 통증이 있어서 못 뛰게 했다. 그런데 (상대 견제가 느슨해) 뛰어도 살 수 있는 게 보이니까 스스로 판단해 뛴다"고 기특해했다. 그만큼 빈틈을 잘 파고든다.
전형도 SSG 3루 주루코치는 "추신수는 상황을 잘 읽는다. 미리 준비를 잘한다. 24일에도 (1루 주자인) 최정한테 "날 잘 보고 있어"라고 말하고는 더블 스틸을 하더라"며 "주력을 떠나 준비 자세와 뛸 타이밍을 잡는 게 진짜 좋다. (경기 전) 전력분석 할 때도 상대 투수의 습관 같은 걸 미리 파악하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MLB 통산 1652경기를 소화한 베테랑. 2005년 데뷔해 16년간 뛰면서 수많은 투수와 포수를 상대했다. 경험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무기'다.
주루와 관련한 부정적인 숫자들. 데이터를 비웃기라도 하듯 '추추 트레인'은 오늘도 달릴 준비를 마쳤다. SSG에서 차곡차곡 그의 도루가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