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여우조연상 주인공 윤여정이 '글로벌 핫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 아시아에서 63년만에 배출된 두번째 여우조연상 등 세계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의미를 남긴 것도 주목도를 높이지만, 윤여정은 국내에서도 5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랑 받았던 '배우 윤여정' 스스로의 매력으로 아카데미와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아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존재만으도 화제성을 이끌었듯 윤여정 역시 말 한마디, 움직임 1초까지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어느 무대에 서든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DNA 능력치가 타고난 'K 아티스트'들이 아닐 수 없다.
공식 수상 장면 외 외신 비하인드 직캠 하나 하나 빠짐없이 인기몰이 중이다. 입담, 패션 뭐하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이 없다. 차곡차곡 쌓은 내공을 아낌없이 펼쳐보이고 있는 윤여정에 속시원한 통쾌함이 터진 것도 여러 번이다. 불안함보다 신뢰 가득한 기대감을 품게 만든 윤여정. "한국 영화사라는 거창한 잣대를 대기 보다는, 윤여정 선생님 개인의 승리라는 생각이 든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꾸준하고 성실하게 활동한 선생님을 아카데미에서 뒤늦게 반세기 넘게 알아본 것이다"고 콕 집은 봉준호 감독의 표현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 만큼 공감대를 높이는 이유다.
"무지개도 일곱 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또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는 윤여정. 쏟아지는 환호에도 "최고보다는 다 같이 '최중'으로 살면 안될까 싶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다. 상을 받았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난 똑같을 것이다"고 밝힌 윤여정.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는 윤여정으로 남을 것임을 알기에 거침없이 목놓아 축하하고 응원하게 만든다. 이미 다채로운 일곱 빛깔을 품고 빛까지 내는, 아름다운 무지개 윤여정이다.
"난 개가 아니에요"
내가 좀 욕을 먹더라도 현답을 이끌어내기 위한 우문이었다면 그나마 인정이다. 그럼에도 따끈따끈한 오스카를 손에 쥐고 내려 온 수상자에게 던질 법한 질문은 결코 아니었다. 윤여정은 시상식이 끝난 뒤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한 외신 기자가 "브래드 피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냐"고 묻자 "나는 냄새를 맡지 않았다. 난 개가 아니다"고 응수했다. 반할 수 밖에 없는 윤여정의 품위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던 'Snobbish people'(매우 고상한 체하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도 다시 있었다. 윤여정은 본식 전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캐나다인들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에 "캐나다인인가요?"라고 되물은 후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글렌 클로스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윤여정은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캐나다인은 속물이 아니에요"라는 한 마디를 남겨 리포터로 하여금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We love you!)"를 외치게 만들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I love her"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수상소감이다.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직후 소감으로 "나는 경쟁을 싫어한다. 상은 이미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전했던 윤여정은, 실제 수상이 현실화 된후 무대에서도 또 한번 진심을 꺼내들었다. 윤여정은 "나는 경쟁은 믿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를 이길 수 있겠나. 다섯 후보는 각기 다른 역을 연기했다. 우리끼리 경쟁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영화에서 수상자다.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고 말했다. 순간 카메라가 비춘 인물은 윤여정과 함께 후보에 올랐던 아만다 사이프리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생각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온 얼굴 가득 감동한 표정과 함께 "나는 그녀를 사랑해(I love her)"를 읊조렸다. 우리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윤여정. 뉴욕타임스는 "뜻밖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드디어 만났어" 브래드 피트 에스코트
윤여정의 백스테이지는 본식만큼 이슈의 중심에 섰다. '미나리' 제작사 플랜B의 수장이자 전년도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이날 여우조연상 시상에 나선 브래드 피트와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냈기 때문. "미스터 브래드 피트, 우리 드디어 만났네요"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시작할 만큼 윤여정에게도, 보는 이들에게도 브래드 피트와의 투샷은 최고 시청률을 이끌 이슈였다. 윤여정이 무대에서 내려온 후 브래드 피트는 윤여정을 직접 에스코트 하며 문을 열어주고, 걷는데 불편함 없이 팔도 내줬다. 또 윤여정 이름이 적힌 카드를 보여주며 미소와 담소도 나눴다.
물론 "우리 촬영할 동안 어디에 있었냐"며 콕 집을 정도로 화통한 윤여정은 백스테이지에서도 브래드 피트에게 "다음 영화에는 돈 좀 더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가 '많이는 아니고 조금 더 쓰겠다'며 슬며시 빠져나갔다. 한국으로 초청도 했더니 브래드 피트가 '알았다'고 답했는데 다 믿지는 않는다"고 귀띔한 에피소드로 폭소를 자아냈다.
"원더풀 그랜마" 힙 패션 끝판왕
패셔너블한 배우로 워낙 유명했기에 윤여정의 '오스카 패션'은 수상 여부 열외로 꾸준히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뛰어난 패션 센스는 단연 아카데미에서도 빛을 발했다. 윤여정이 택한 드레스는 '나 드레스요'라고 온 몸으로 뽐내기 보다, 고상하고 우아하면서도 캐주얼한 블랙 드레스였다. 드레스는 두바이 브랜드 Marmar Halim(마마 하림) 2017년 FW 콜렉션 제품, 가방은 Roger Vivier(로저 비비에), 주얼리는 Chopard(쇼파드) 제품으로 몇 십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을 완벽한 자태를 선보였다. 윤여정은 버라이어티 선정 레드카펫 베스트 드레서 꼽히기도 했다.
예상못한 백스테이지 패션은 화제성의 정점을 찍었다. 드레스 위에 툭 걸친 항공 점퍼 한 장과 검은 마스크가 '퍼펙트 윤여정'을 완성했다.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과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 콜래버레이션 항공 점퍼에 대한 정보는 사진과 영상이 뜬 즉시 온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항공 점퍼를 입고 오스카에 이름을 새기는 모습,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찍은 사진은 두고두고 회자 될 전망이다. 또한 사용감 있는 에르메스(Hermes) 블랙 켈리백도 무심한 듯 바닥에 툭 놓여 있었지만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명품의 값어치마저 증명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