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 이후 2년 만에 티파니 영(33)과 만났다.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열정, 열정, 열정"을 외쳤던 모습 그대로 티파니 영의 일 욕심과 부지런함은 여전했다. 연습과 노력으로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 하트 역할을 쟁취,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15년 차 소녀시대의 내공은 더욱 단단해졌지만 티파니 영은 오히려 "신인 배우"라고 몸을 숙였다. 연습할 땐 나머지 공부를 자처했고, 공연 중인 지금도 일찍 도착해 자신만의 루틴으로 모든 환경을 꼼꼼히 체크한다.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 이유에 티파니 영은 "'라떼는 말이야'일 수 있겠지만"이라 웃으며 인내와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즘은 시대가 빠르게 변화해서 그런지 참을성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때는 장인정신이랄까, 한 땀 한 땀 채워 나가는 것에 익숙하거든요. 고지식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나를 보고 있을 후배들에게도 당연하다 여길 수 있게끔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경력이 어느 정도 됐다고 해서 무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말도 안 돼요. 뭔가를 표현하는 작업은 정말 선물 같은 일인데 그에 맞는 존중을 갖춰야죠. 이건 잠깐 하는 경쟁이 아니라 커리어를 쌓아가는 일이니까요."
-2011년 뮤지컬 '페임' 데뷔 이후 오랜만에 뮤지컬로 돌아왔다. "20대 초반에 도전한 '페임'과 30대가 된 지금의 '시카고'는 숫자만으로도 느껴지는 바가 크다. 이전보다 사람으로서도, 아티스트로서도 건강해졌다.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나름의 방식을 찾은 후에 '시카고'란 작품을 만나 정말 다행이다."
-공연 2주가 지났는데 무대는 익숙해졌나. "김경선 선배님이 '다른 공연은 이쯤 되면 편해지는데 이 공연은 아직도 안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연출 타이밍, 큐 사인이 정확한 공연이라 항상 바짝 긴장한다. 노래는 편안해졌지만 동선이나 위치를 보면서 체크한다. 몸이 절대 편해질 수 없는 공연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연습 때 중점을 둔 부분은. "티파니의 록시 하트는 여러 감정과 야망을 처음 알게 되면서 세상에 눈을 뜨는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었다. 록시의 선택마다 일어나는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돌 할 때는 타이밍에 맞춰 뛰어들어오는 것조차 계산해야 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따르려 한다. 특히 나는 소녀시대 때부터 '센터병'이 없었다. 동선과 칼군무에 자부심이 있는 그룹이라서 파트가 넘어가거나 동선이 복잡할 때마다 배려심이 넘친다. '시카고' 하면서도 다른 배우를 챙겼는데 연출님이 '안 돼, 네가 먼저 가야 돼'라고 말씀하시더라. 록시를 연기할 때만큼은 센터병이 생겨야 할 것 같다."
-록시와 닮은 부분이 있다면.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을 이뤄야 하는 집중하는 모습이 비슷한 것 같다. 집중하다가도 금방 산만해지고 들뜨는 성격도 뭔가 나와 비슷하다. 뭐에 집중했다가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 닮았다."
-워낙 유명한 공연이라 캐릭터 소화에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디렉션과 스토리에 충실히 하려고 했다. 아무리 생각이 많아도 전문가에 맡기는 스타일이다. 감독님과 많이 소통한다. 끝나자마자 노트를 받고 다음 회에서 부족함을 더 채우려는 편이다. 얼마 전 공연에서 엄지를 받기도 했다. 관객들에겐 기존에 생각하는 록시가 있어도 열린 마음, 열린 눈으로 봐주시길 바랐다. 이번 시즌과 연출이 프레시하다는 평가도 있다. 오래된 작품임에도 그만큼 신선하고 재밌고 새롭다는 뜻이다. 새로운 포인트로 업그레이드된 '시카고'이니까 '이래야 돼' 이런 건 없는 것 같다. 믿어주시고 보러 와주시길 바란다."
-'시카고' 선배들과는 어떻게 호흡했나. "처음 가자마자 나를 붙잡고 '넌 록시야'라고 했다. 선배님들이 내가 나를 믿기도 전에 늘 '넌 우리의 록시야'라고 해주신다. 매일매일 '맞습니다' 이러면서 연습에 임했다. 이런 심플한 구호가 나를 정말 꽃피우게 했다. 선배님들은 20년째 하는 스케줄이기에 믿고 따를 수 있다."
-연습량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매일 밤 10시까지 록시 타임이라 생각하고 연습했다. 오전 9시에 연습실 도착하면 대학생처럼 로테이션 스케줄로 다 같이 연습한다. 오후 6~7시 정도에 끝나는데, 나는 적어도 오후 9시까지는 항상 더 하고 갔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 전문가에 도움을 받은 만큼 무대에서 그대로 표현이 되고 있다. 공연 중인 지금은 아침에 이미지트레이닝을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대본을 따라간다. 잘한 것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퍼포머로서 나만의 근육을 만들어가는 기분이다. 공연장에 가선 한 시간 웜업을 하고 혼자 무대 스케칭을 한다. 소품도 체크한다. 매회 처음인 것처럼 꼼꼼히 준비하려고 한다."
-소녀시대 준비할 때보다 힘들었다고. "소녀시대보다 더 힘든 이유는 너무 명확한 레거시가 있는 작품이라서다. 너무 훌륭한 스토리에 따라 디렉션이 정확한 작품이다. 소녀시대가 나오기 전엔 다양한 분야를 연습했는데 '시카고'는 틀이 있어서 더 힘들었다. 어린 감성으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연습량과 텍스트다. 모든 면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도 든다. 멤버들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우리가 기억한 것보다 네가 하는 걸 보니 얼마나 많이 준비해야 할 작품인지 알았다'고 응원해줬다. '난 못한다' '너니까 하는 거다'라고 웃겨줬다. 특히 한국 공연을 처음 멤버들과 봤기 때문에 더욱 색달랐다. 배우를 꿈꿨다는 걸 멤버들이 알기에 '네가 언젠가 해낼 걸 알았지만, 그 첫 작품이 '시카고'라니' 라면서 같이 뭉클해 했다. 멤버들이 점점 짝꿍을 맺어서 올 것이라고 한다. 하하."
-한국어도 많이 늘었겠다. "대본을 통째로 외우다 보니 오타까지 외운 일이 있었다. 아이비 선배님이 오타라고 알려주시기 전까지 그대로 따랐다. 그게 잘못된 단어인지도 모르고 외우는 거다. 나는 안 되면 될 때까지 답을 찾는 스타일이라 일단 외워간다. 덕분에 새로운 한국어를 많이 배웠고 극장 용어도 많이 알게 됐다. 빌리 대사 중에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영어 대본과도 비교해봤다. 내가 영어 대본으로 숙지하니까 '파니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머릿속에서 영어로 번역돼?'라고 궁금해하셨다."
-30대 배우로서 만난 첫 작품이 '시카고'라 부담되진 않나. "당연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 질문을 받으니 더욱 부담된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과거나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나도 그런 편인데 지금을 소중하게 느끼고 행복해하는 것에 충실히 하려고 한다. 연습벌레인 나로서는 더 힘든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도 든다. 언젠가 또 다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날 것이란 믿음이 있다. 눈과 귀를 열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솔로와 소녀시대로서 앞으로의 활동은 어떨까. "늘 행동으로 보여드려 온 것 같은데 앞으로도 서로를 믿고 나아갈 것이다. 소녀시대는 내게 가족이고 집이다. 미국에서도 '패밀리~'라고 부르며 멤버들을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멤버들과 17년이 되어가는데 개인과 그룹으로 많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소녀시대는 이래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솔로는 그런 것이 아니라서 각자의 매력을 드러낸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연 만큼 더 채울 수 있고, 그만큼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