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적으로 과장되게 대가리가 큰 당나귀가 거친 갈색 대지 위에 붉은 빛 여명을 배경으로 고집스레 버티고 섰다. 주변으론 잡초와 야생화가 역시 고집스럽게 뒤죽박죽인 채로 제각각의 생명력을 뿜어낸다.
사석원 개인전 ‘새벽광야’가 29일부터 5월 30일까지 부산시 해운대구 그랜드조선 부산에서 열린다. ‘새벽광야’는 2018년 ‘정면돌파’전 이후 부산에서 3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사석원의 페르소나는 당나귀, 부엉이, 사슴, 수탉 등 동물이다. 이전 전시와 차이가 있다면 화면을 압도하지 않고 배경에 녹아들어있다는 점이다.
‘새벽광야’란 전시명칭은 자못 시사적이다. 시작의 시간, 사물이 드러나는 시간에 거칠고 황량한 이미지의 광야가 공간이다. 즉 역경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가능성의 시간이다.
작가는 본인의 노트에서 ”거친 황토와 상처 난 자갈이 깔려 있는 광야에 당나귀와 수탉, 황소와 호랑이, 독수리, 부엉이, 사슴, 소나무 등이 우뚝 서있습니다. 결기 있게 미래와 맞서 서있는 그것들은 나의 분신입니다. 즉, 내가 그들입니다”고 말한다.
사석원의 작업은 두꺼운 물감과 거친 붓질의 궤적들이 캔버스를 장악한다. 그에게 진실은 정제되고 의도된 것이 아니다. 뿌려진 물감처럼 우연하고 나이프에 뭉개진 물감처럼 전혀 친절하지 않다. 그처럼 날 것 그대로의 생경함을 구현하는 화풍은 ‘새벽광야’에 더할 나위 없이 맞아떨어진다.
그는 폴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에서 읊은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는 시구를 인용한다. 생명은 이유 불문 살아내는 것이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새벽광야’는 코로나로 지친 대한민국에 전하는 작가의 위로다.
작가는 말한다. “얼마나 거친 미래가 닥칠지는 모르겠습니다. 삶은 늘 그렇듯이 오리무중이니까요. 새벽 광야가 그렇습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안개마저 자욱한 새벽의 광야는 보이지 않기에 두려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압니다. 곧 내 앞에 펼쳐질 광경이 황홀한 낙원만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세상과 맞닥뜨릴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살아야죠. 싸워서라도 살아야겠지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굳은 의지를 갖고 살아가겠습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