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구단에서 폭행 사건이 터졌다. 성추행 논란도 일어났다. 올해 초 스포츠계를 강타한 학교 폭력(학폭) 사태와는 결이 다른 문제다. 불과 2년여 전, 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1(1부리그) 대구 FC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법정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대구는 '대팍 신드롬'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등의 성과로 가장 성공적인 시민구단으로 꼽히는 클럽이다. 하지만 폭행과 성추행 논란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구의 행보에서 시종일관 프로 의식과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간스포츠는 폭행·성추행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을 만났고, 제3자의 목소리도 들었다. 가해자와 대구 구단의 반론도 청취했다.
2018년 10월 12일 대구 선수단 숙소. 이곳에서 대구 소속 선수 A는 선배 B에게 무참히 폭행을 당했다.
A는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이었다. 중간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갔다는 이유로 B에게 맞았다. 1층 식당에서 맞기 시작했고, 머리채를 잡힌 채 4층 세탁실까지 끌려가서 맞았다. B는 폭행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세탁실에 있던 조끼를 주먹에 감싼 후 때렸다"고 털어놨다.
4층에서 팀 닥터와 통역원이 두 사람을 말렸다. 이 장면을 몇 명이 목격했는지를 놓고 A와 구단 사이에 이견이 있다. 그러나 목격자가 있다는 건 분명하고, 폭행이 일어난 건 팩트다. 가해자 역시 폭행 사실은 인정한 상태다. 병원에 다녀온 A는 구단 관계자와 만나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렸다. A는 "구단 직원이 나에게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A에게 약속한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구단이 B에게 내린 징계는 나흘 간 훈련 배제. 이게 전부였다. 벌금도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인 A와 가해자인 B를 선수단 숙소에 함께 방치했다.
A는 "B를 나흘 정도 훈련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전부였다. 대구는 선수가 택시 기사와 시비가 붙었다고 해서 1000만원 벌금 징계를 내린 구단이다. 그런데 폭행이 일어났는데도 징계가 없었다. (다른 구단이었다면) 퇴출당했을 것"이라며 "폭행 후 B가 집에 간 줄 알았다. 하지만 숙소에 있었다. 계속 날 찾아왔다.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안해서 동료 방에 항상 숨어 있었다"고 고백했다.
A의 가족들은 "대구 구단에 체계가 없다. 폭행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 쉬쉬하려고만 했고, 가해자만 감쌌다. 구단이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며 분개했다.
최근 A의 가족과 구단 관계자가 만났다. 일간스포츠는 당시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 이 자리에서 구단은 "단순 폭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같은 숙소에 방치한 것을 두고 "방이 다르니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대구 구단은 "당시 폭행 사건을 보고받았다. B가 A의 아버지에게 사과했고, A에게도 사과했다. 선수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사과했다. 원만하게 잘 정리가 됐다고 봤다"고 말했다.
A는 "나에게 사과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내가 사과를 받아들인 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A의 아버지는 "아들은 성인이다.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아들이 용서하는 건 아니다"며 "(고소 등으로 인해)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면 구단이 적절한 징계를 내릴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런 것(징계)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과는 사과고, 징계는 징계다.
대구 구단은 "B에 대한 구단의 공식적인 징계는 훈련 배제가 전부인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적절한 징계인가'라는 질문에 구단은 "지금 시각에서 3년 전을 바라보면 미흡한 조치로 보일 수 있다. 이 부분은 인정한다. 그때 왜 징계를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그때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정말 해결이 잘 됐다고 생각이 들어 그렇게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의 가족들에게 "단순 폭행"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말실수였다"고 해명했다.
구단 내에서 폭행이 발생한다고 해도 구단이 한국프로축구연맹이나 대한축구협회에 보고할 의무는 없다. 즉 폭행 사건은 구단 자체 징계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준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 규정에는 '선수에 대한 폭력' 징계 기준이 있다. 선수가 선수를 폭행했다면 최소 자격정지 1년, 최대 제명이다. 대구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은 가이드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