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수와 심사 열정은 비례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년 영화계는 극심한 가뭄기를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은 등장했다. 다만 상업·독립영화의 경계를 떠나 전 개봉작 모두 예상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운 공통점이 있기에 따뜻한 위로도 필요했다.
후보 선정부터 최종 수상자(작) 결정까지, 올해의 심사위원들은 작품을 여러 번 보고 또 보는 과정을 거치며 어느 해보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논의를 진행했다. 알짜배기 작품들 사이에서 보석을 골라냈고, 한치의 양보없는 주장을 펼치며 팽팽한 열기를 뿜어내기도 했다. n차 투표는 기본, 재논의도 수 십번 이뤄졌다. 연기상 부문은 모든 배우들이 얼마나 멋진 열연을 해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에 "공동 수상은 절대 안될까"라는 속내도 터져 나왔다. 뭐 하나 쉬운 부문이 없었던 탓에 누구든 납득 가능하고 흡족할만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강제규 감독은 "'작품이 어느정도 한정돼 있어 평가도 쉽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이 보란듯이 어긋났다. 오히려 '작품이 굉장히 많았다면 더 쉬웠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녹록치 않은 선택이었다"며 "그만큼 위기의 순간에도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빛났다. 좋은 작품을 남겨 준 모든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최단시간 확정된 부문은 영예의 대상이다. 후보 선정 회의 당시부터 "대상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니냐" 언급됐던 심사위원들 마음 속 원픽은 바로 이준익 감독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이준익 감독과 '자산어보'라는 작품을 대상 후보로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준익 감독이 있었기에 '자산어보'라는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며 이준익 감독을 대상 수상자로 빠르게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이준익이라는 감독 겸 아티스트가 '자산어보'를 만든 것이다. 작품의 기획, 연출, 캐스팅 등 모든 것에 이준익 감독의 손길이 닿았다. 이준익 감독이 곧 '자산어보'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준익 감독이라는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관객들이 '자산어보'라는 좋은 작품을 알아주고 또 기억해주길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상에 이준익 감독 이름이 오르면서 작품상과 감독상, 더 나아가 신인감독상과 시나리오상까지 난상 토론이 펼쳐졌다. 작품상부터 난항이었다. 당초 '자산어보'에 힘이 쏠리나 싶었지만, 흉흉한 시국 속에서도 흥행이라는 상업영화 0순위 목표를 일궈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각 작품의 정체성 자체도 나쁘지 않아 고민이 깊어졌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이국적 배경에서 신선한 촬영 기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액션 영화의 발전을 보여줬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두 시간이라는 한 영화 안에 다양한 소재와 메시지를 촘촘하게 얽어 냈다는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남매의 여름밤'과 '소리도 없이' 역시 작품이 보여준 신선한 성과들에 대한 평이 오갔지만, 어렵게 선정된 최종 작품상 주인공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기본적으로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90년대 계층문제를 소프트하면서 리듬감 있게 잘 살렸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대기업, 환경문제 등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도 용기있게 풀어냈다. 또한 영화 속 배경으로도, 현실적 개봉 시기로도 '범죄와의 전쟁'과 딱 10년의 격차가 있는데, 안팎으로 여성들이 당차게 걸어 온 길을 설명하는 상징성이 남다르다. 여러모로 바뀐 시대를 잘 보여준 느낌이다. 이 시국에 흥행을 했다는 점도 작품적으로 중요하다"고 총평했다.
감독상과 신인감독상, 시나리오상 후보는 동시 노미네이트 된 감독들이 여럿 배출되면서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깊었다. 그 중에서도 신인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것에 고무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누가 받아도 이견없을 결과에 행복한 고민을 이어갔다. "영화계는 힘들었지만 신인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했다. 올해만큼은 기성 감독과 신인 감독 사이에 벽을 두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다"는 주장 속 최종 감독상 경합 대상은 홍의정 감독과 윤단비 감독이었다. 결이 다른 '소리도 없이'와 '남매의 여름밤' 모두 좋은 작품이라는 공통되 의견 아래 논의에 논의를 거듭, 세번째 최종 투표에서 4표를 획득한 홍의정 감독이 감독상을 꿰찼다. 심사위원들은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어떠한 요구가 분명히 있었을텐데 자신의 색깔을 용감하게 보이고 지켜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정형화 된 틀을 깬 작품의 힘과 연출의 정교함이 명확하다. 무엇보다 기성 감독들과 비교해도 신인답지 않게 영화를 잘 만들었다. 미래 뿐만 아니라 현재가 궁금한 감독이다"며 박수를 보냈다.
윤단비 감독은 신인 감독으로 그 능력을 인정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작지만 아름다운 '남매의 여름밤' 세계관을 홀로 세워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윤단비 감독이 펼쳐나갈 세계관도 궁금하게 만든다. 완성체가 된 감독이 만든 작품 같다. 이야기에 진정성도 단단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신인감독상 후보 '콜' 이충현 감독 역시 함께 거론됐지만 결과는 아쉽게 됐다. 심사위원들은 "다른 해였다면 충분히 신인 감독상을 탈 수 있었을테지만 올해는 훌륭한 신인 감독 유독 많이 탄생한 해라 아쉽다"고 덧붙였다. 시나리오상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자산어보' '내가 죽던 날'의 강점이 고르게 언급됐지만, '내가 죽던 날'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박빙 투표 끝 '내가 죽던 날'이 한표 차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애초 갖고 있었던 이야기 자체가 나쁘지 않았던, 완성도 좋은 시나리오로 출발한 작품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잘 유지했다"고 말했다.
남녀최우수연기상은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던 충무로 젊은 피 유아인과 전종서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여성 악역의 새 캐릭터를 제시한 전종서는 긴 상의없이 최종 만장일치, 유아인은 '자산어보' 변요한과 투표에서 한표 차로 백상 트로피를 거머쥐게 됐다. 특히 남자최우수연기상은 매해 가장 치열한 부문으로 손꼽히는 만큼 올해도 이변없이 다섯 후보 전부 심사위원들의 애정어린 평가를 받았지만 유아인의 존재감이 조금 더 우수했다. 심사위원들은 "유아인은 지난해 영화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제일 고마운 존재다. 일찌감치 인정받은 배우이기에 뭘 하든 잘할 줄 알았지만 더 잘해냈다. 본인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데 겁이 없고 용감하다. 캐릭터에 대한 적응도 빠르다. 분명 유아인의 해였다"며 "유아인이 워낙 잘하는걸 알고 있던 배우였다면, 변요한은 재발견이었다. 앞으로 굉장히 잘 해나갈 배우로 가능성을 다시 보였다. '자산어보' 이전과 이후의 변요한은 확연히 다를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녀조연상은 김선영과 박정민이 치열한 접전 끝 각각 4표로 과반수 이상을 획득했다. 여자조연상은 김선영과 이정은이 대세였다. 이정은은 "이정은은 대체불가 배우가 됐다. '기생충'부터 시작해 매 작품 대단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내가 죽던 날'에서 말 못하는 캐릭터로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가장 빛나는 캐스팅이었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세자매' 김선영을 꺾지는 못했다. 김선영은 "사실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려도 좋을만한 비중과 연기를 담아냈다. 독보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지난해 TV부문 여자조연상에 이어 영화부문 여자조연상으로 호명되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최우수연기상 못지 않게 남자조연상도 심사위원들이 쉽게 답을 내지 못했던 부문. 작품의 조연 롤로서 주연이 채우지 못하는 매력을 얼만큼 채워줬는지, 캐릭터적으로 배우의 성취는 어느 정도였는지, 또 얼마나 잘 녹아 들었는지 종합 평가 결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파격적인 트렌스젠더 연기를 소화한 박정민이 많은 표를 가져갔다.
마지막으로 남녀신인연기상은 첫 영화로 '발굴' 된 홍경과 최정운이 생애 단 한번의 영광을 차지했다. 여자신인연기상은 첫 투표에서 박소이, 신혜선, 장윤주, 최정운이 고른 지지를 얻었지만 신혜선과 최정운으로 최종 압축됐다. 심사위원들은 최정운에 대해 "'남매의 여름밤'에서 연기상을 준다면 최정운이다. 일상적이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잘 표현했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어려운 역할을 쉽게 풀어냈다. 감독의 디렉팅도 있었겠지만 첫 영화에서 높은 가능성을 보였다. 배우로서 꾸준히 활동해주길 희망하는 배우다"며 4표 이상의 표를 몰았다. 또한 홍경은 "캐릭터 성격이 강한 역할로 잘 보일 수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연기를 못해도 혹평 받기도 쉬웠다. 상황에 훅 빠져 연기하는 모습이 때론 소름이 끼치더라"며 박승준과 대결에서 5표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