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상상력과 의미있는 메시지의 끝은 어디일까. 이번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바다괴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친구, 비밀, 추억, 호기심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우정'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루카'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이 21일 진행된 온라인 컨퍼런스를 통해 '루카'의 한국 개봉에 대한 소감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사를 건넨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지금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아주 좋다. 한국도 곧 여름으로 접어들 것 같은데 우리 영화가 여름에 대한 이야기다. 여름을 만끽하기에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4년 이상 노력했고, 방금 모든 작업을 끝마쳤다"며 따끈따끈한 신작에 들뜬 마음을 표했다.
'루카'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 마을에서 두 친구 루카와 알베르토가 바다 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아슬아슬한 모험과 함께 잊지 못할 최고의 여름을 보내는 감성충만 힐링 어드벤처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데뷔작 '라 루나'가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라 루나'는 '달에 떨어진 별을 쓸어 내리는 가족' 이라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에서 출발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감독이 어린시절 아버지·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을 모티브로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장편 애니메이션 '루카'는 유년 시절 단짝친구와 함께했던 추억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또 다른 특별함을 엿보이게 한다. 수줍음이 많고 소심했던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11살 때 자유롭고 활동적인 알베르토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알베르토와 함께 쌓았던 시간들은 극중 물 밖이 궁금하지만 무서운 루카와 그를 인간세상으로 이끄는 알베르토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됐다.
"알베르토는 실제 내 친구의 이름이다. 실명을 그대로 썼다"고 밝힌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열정적이고, 호기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친구였다. 가족들이 집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더 자유로운 친구였는데 그에 반해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지냈다. 알베르토는 안주만 하던 내 삶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였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절친이다. 친구는 공군 파일럿이 됐다"고 소개했다.
유년시절 이야기를 담아낸 것에 대해서는 "픽사 영화들은 항상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개인적 이야기,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난 제노바에서 태어나 12살 때 베스트 프렌드 알베르토를 만났다. 나는 수줍음 많고 내향적인 아이였는데, 그 친구는 외향적인 장난꾸러기였다. 내 성장에 정말 큰 영향을 끼쳤다. 성장하고 자아를 찾는데 있어 우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그 친구와 지내면서 직접적으로 느꼈다. 그 친구와 내가 어떤 점이 닮았고, 또 다른지 확인하면서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루카'를 관람한 관객이 어른이라면 옛날 친구 생각이 날 것이다. '전화한지 오래 됐는데 전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어린이라면 지금 옆에 있는 친구를 고맙게 생각하며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미소지었다.
루카는 바다 밖 세상이 궁금하지만 두렵기도 한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자칭 인간세상 전문가 알베르토와 함께 바다 밖 세상의 신나는 모험을 감행하지만, 물만 닿으면 '바다 괴물'로 변신하는 비밀 때문에 매 순간 위기를 맞이한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문어처럼 위장과 변신이 가능한 바다 생물에서 영감을 받아 물에 닿지 않으면 인간으로 변하는 바다 괴물의 독특한 설정을 만들어냈다.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에 대해 "내가 독서를 좋아해 책을 많이 읽는다. 혼자 멍 때리면서 공상도 많이 한다. 그럴 때 영감이 떠오르곤 한다"고 귀띔한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바다괴물 같은 경우는 그래픽적으로 아름답게 남아있는 고대 벽화 등의 그림을 참고하기도 했다"며 "바다괴물이라는 설정이 있지만 결국 아이다. 나도 어린시절 어디에 섞이지 못하고 '내 자신이 못났다' 느끼며 살았다. 친구와는 너무 잘 통했지만, 크게 보면 우리 둘 다 아웃사이더였다. 그러한 상황들을 어디에서 말하지 못하는, 꼭 지켜야 하는 비밀인 '바다괴물'이라는 캐릭터에 투영 시켰다"고 설명했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아이들이 느낀 감정과 직접 겪은 경험들은 훗날 변화와 변신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실제 회화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표현하고 싶었고, 아이들의 장난기와 유쾌함도 따사로운 색감과 터치로 그려내고 싶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풍부하게 표현이 됐으면 싶었다"고 강조했다.
상상을 현실화 시키는 것은 결국 기술이다. "바다괴물로 변신하는 장면은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는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용감하게 도전했지만 실제로도 쉽지는 않았다"며 토로한 후 "기본적으로 자연에서 영감을 찾으려 했다. 문어를 보면 색깔 뿐만 아니라 텍스처 자체를 바꾼다. 위장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고, 이구아나의 움직임도 살펴봤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두발걷기까지 섞어 만들었다. 기본 뼈대에 발전한 기술이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렸다"고 읊조려 웃음을 자아냈다. '루카'에는 감독의 유년시절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 대한 찬사,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영감받은 부분들도 자연스럽게 녹아져있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이탈리아 여름 해변은 너무 특별했다. 찬란함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적, 지리적으로 아름다운 절벽이 많은데 많은 이들이 신나게 바다로 뛰어든다. 그러한 모습을 그대로 녹여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에 대한 모든 것 러브레터다. 이탈리아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음식, 음악, 경관에 대한 찬사가 들어간 작품이다"며 "50~60년 이탈리아 영화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난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이 자란 세대다. 어렸을 땐 '미래소년 코난'을 즐겨봤다. 그 작품에도 두 친구가 나온다. 어떤 면에서는 '루카'가 오마주를 했다. 코난이 친구 덕분에 힘을 받아 모험을 떠나고 장난을 치는 모습들이 우리 영화에도 녹아져있다"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후에도 명작들을 쏟아냈기 때문에 어떤 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선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은 다른 것보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이 좋았다. 아이의 눈은 늘 경이에 차 있다. 작은 아이가 숨어서 빼꼼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너무 좋다"며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물 밖으로 나가는 바다 괴물'이라는 설정의 캐릭터가 우리 영화에는 완벽한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아이의 눈을 통해 우리도 함께 경이에 찬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되길 희망한다"고 진심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