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혹은 갈망했던 '주연 신고식'이다. 비중이 커지고, 라인업 최상단에 이름을 올린 표면적 변화는 크지만 작품과 캐릭터, 그리고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당연하게 뒤따르는 책임감과 부담감마저 캐릭터에 녹여버린 조우진이다. 신스틸러에서 믿고보는 배우로 어느덧 주연 자리까지 따낸 조우진은 성장형 배우의 좋은 예로 기억될만한 인생 페이지를 야무지게 기록했다.
조우진이 첫 주연으로 참여하게 된 작품은 영화 '발신제한(김창주 감독)'. 은행센터장이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는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는 도심추격스릴러다. 조우진은 은행센터장 성규 역을 맡아 이재인, 지창욱 등과 호흡 맞췄다. 감정 변화가 극심한 스릴러 드라마 장르에 원맨쇼 활약을 펼쳐야 하는 만큼 조우진에게는 큰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화끈한 주연 신고식을 치를법한 작품으로도 손색없다.
조우진은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우민호 감독)'에서 조상무로 등장해 충무로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행동대장 악역 캐릭터로 손목과 발목을 썰어버릴 정도의 극악무도한 면모를 보이지만, 그 세계에서 이미 닳고 닳아 큰 감정 동요없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표정과 말투로 인물을 표현해내면서 전례없는 신선함을 선사했다. 윽박지르지 않고, 오버하지 않는 서늘함은 단박에 관객들의 뇌리 속에 각인됐다.
이후 필모그래피는 승승장구.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쉼없는 다작 활동을 펼쳤다. 코미디면 코미디, 감동이면 감동,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가 없었고 못하는 연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 제 영역을 확장시킨 조우진은 '내부자들' 개봉 이후 딱 6년만에 조우진의 이름으로 홍보가 되는 주연작을 선보이게 됐다. 성장의 과정을 함께 지켜봤기에, 감개무량한 첫 주연 신고식에도 반가운 응원의 목소리가 더 크다. 완벽하리만치 맡은 바 최선의 결과물을 내놨던 조우진이기에 첫 주연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을 리 없다. 20일 '발신제한'을 처음 소개하는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솔직히 실로 엄청났다"고 고백한 조우진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떡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수백가지 질문들이 현장에 나설 때마다 바닥에 쭉 깔려 있었다"고 털어놨다.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캐릭터로 해소시켰다. 조우진은 "그냥 '매 장면, 매 회차에 집중하고 몰입하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조우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가졌을 부담감 보다는 극중 성규가 갖고 있을 긴장감, 당혹스러움이 훨씬 더 상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규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며 "가끔 모토로 삼는 분들의 좋은 말과 글귀는 참고하기도 하는데 이번엔 '전체를 너무 길게 보지 말고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는 말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생각해낸 자신의 정체성은 프라이팬 위 소시지. 비유의 신(神)으로 거듭나고 있는 조우진은 "성규는 차갑고 냉철한 느낌을 담은 인물인데, 사건을 겪으며 점점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보통 일상을 많이 놓치고 살지 않나. 가족에 대한 소중함,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행복감을 잊고 사는 가장이다. 그랬던 그가 조금씩 뜨거워지면서 나름대로 성장해간다는 느낌이 분명 들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끈후끈 달궈진 프라이팬에 소세지를 던지면 타닥타닥 뛰지 않나. '나를 그렇게 만들자. 던져버리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예전에는 캐릭터를 위해 다른 캐릭터를 참고하기도 하고, 차용도 하고, 흉내도 내 봤는데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인간 조우진으로서 상황이 주는 긴장감에 나를 완벽하게 빠뜨려보자'는 생각이 컸다"며 "'우리는 한 팀'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은데, 감독님, 스태프들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제작진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애초 시나리오가 좋았기에 덤빌 이유도 샘솟았다. 조우진은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이렇게 힘이 센 시나리오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텐션이 넘쳤다. 조금 격한 표현으로 내 멱살을 잡고 끌고가는 시나리오였다. 속도감과 타격감이 엄청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후루룩 빨려 들어가면서 봤다. 보통 객관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읽기 마련인데, 감정 이입이 쉽게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전 공개된 예고편의 100배 이상 쾌감을 극장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한 조우진. 성수기로 향하는 초여름의 문을 기분좋게 열 복덩이가 될 수 있을지 영화계의 관심이 비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