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EPL)다. EPL은 188개국에서 방송되고, 30억명 이상이 시청한다. EPL은 전 세계 축구리그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주요 축구리그들은 EPL의 상업적 성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질문 2. EPL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프로스포츠 리그일까?
아니다. 미국의 3대 프로스포츠인 미식축구(NFL), 야구(MLB)와 농구(NBA)가 부유한 리그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EPL은 네 번째로 수익을 많이 내는 프로스포츠 리그다. 농구는 축구 못지않게 전 세계적인 스포츠이니 그렇다 쳐도, 미국 등 일부 지역에서만 인기 있는 NFL과 MLB가 EPL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게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다.
MLB는 정규시즌에만 무려 2430경기를 치르니 열외로 하자. NFL은 한 시즌에 총 269경기를 한다. EPL은 그보다 훨씬 많은 380경기를 연다. 하지만 EPL의 총 수익은 NFL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NFL이 EPL보다 인기가 훨씬 많을 것 같다.
TV로 각 리그를 보는 시청자들을 비교해 보자. 2019년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리버풀의 경기는 전 세계에서 약 7억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NFL 챔피언을 가리는 슈퍼볼의 최고 시청률은 2015년에 열린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시애틀 시호크스의 경기에서 나왔다. 당시 1억 1400만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말해주듯이 EPL은 NFL보다 인기가 더 많은 스포츠다. 하지만 수익은 그 반대다. 왜 그럴까?
방송 수익은 NFL과 EPL의 가장 큰 수입원이다. 각각 리그 전체 수입의 50~60%를 차지하고 있다. NFL은 평균 경기 시간이 3시간 10분 정도고, EPL 경기는 2시간이면 끝난다. 미식축구의 특성상 방송국은 NFL 경기 중 50분이 넘는 광고 시간을 편성할 수 있다. 특히 슈퍼볼 중계 시 30초 광고의 단가는 무려 500만 달러(56억원)를 넘는다.
하지만 EPL은 하프 타임 때 몇 분 동안 광고를 하는 게 방송국 광고 수입의 전부다. 따라서 NFL의 중계권료가 EPL보다 훨씬 비쌀 수밖에 없고, 리그 전체 수익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NFL은 경기가 열리는 날 입장 수입(matchday income)도 EPL보다 훨씬 많다. 우선 관중 수를 보자. 평균 7만명의 팬이 NFL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데 비해, EPL 경기장의 평균 수용 인원은 3만7000명에 불과하다.
티켓 가격은 어떨까? NFL의 평균 티켓 가격은 105달러(11만8000원)이나 EPL의 평균 티켓 가격은 28.5파운드(4만4000원)에 불과하다. NFL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싸다.
스폰서십 분야는 좀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리그는 유니폼을 성스러운 공간(sacred space)으로 여겨 광고 혹은 스폰서 로고 부착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NBA가 2017년부터 유니폼에 광고 패치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셔츠 혹은 저지(jersey) 스폰서십이 미국 4대 프로스포츠에도 서서히 허용되고 있다. 현재 NFL은 저지 스폰서를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EPL은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경기장 명명권(naming rights)을 통한 수입은 NFL의 완승이다. NFL의 32개 팀 중 29개 구단이 경기장 명명권을 판매해 많은 수익을 올리는 데 반해, 2020~21시즌 명명권을 판매한 EPL 구장은 4개에 불과하다.
NFL 특유의 시스템인 수익 공유제(revenue sharing)도 빼놓을 수 없다. NFL의 수입원은 전국적인 수입(national revenue: TV 중계권료, 캐릭터 상품 판매와 라이선스 계약으로 구성)과 지역 수입(local revenue: 티켓 판매 등 경기장에서 올린 수입과 스폰서십 계약으로 구성)으로 나뉜다. 전국적인 수입은 구단 수입의 약 60%를 차지하고, 이 수입은 성적에 상관없이 NFL에 속한 32개 팀에 공평하게 분배된다.
아울러 NFL은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역(逆) 드래프트 제도(전 시즌 꼴찌팀이 신인 드래프트 1순위를 보유)를 도입했으며, 연봉 총액 상한제(salary cap)도 받아들였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NFL은 부(富)가 소수의 구단에 몰려 이들이 리그를 독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흥미로운 점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미국이 NFL에서 사회주의 모델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NFL의 모든 구단은 부자가 됐다. 상향 평준화된 전력을 가진 팀들의 경기는 박진감이 넘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NFL의 인기 상승으로 연결되었다.
EPL의 경우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클럽은 실질적으로 서너 개에 불과하다. NBA도 특정 팀들이 꾸준히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고 있다. 이에 반해 NFL은 많은 팀이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2005년 이후 매년 다른 팀이 챔피언을 차지하고 있다.
EPL과 NFL 사례를 보면 인기와 수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기 또한 행정가와 마케터들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축구 경기에 많은 광고를 넣을 수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경기 규칙을 약간 바꿔서라도 이를 가능하게 만들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차별화된 마케팅과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한 NFL의 사례는 특히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프로스포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