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에 한동안 사라졌던 ‘영건’ 투수가 계속 등장한다. 올해도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8일 현재 원태인(21·삼성 라이온즈)과 김민우(26·한화 이글스)가 나란히 7승으로 다승 1위다. 원태인은 평균자책점은 2.66으로 이 부문 6위다. 김민우도 3.60(18위)으로 준수하다. 두 사람은 자신의 팀에서 각각 ‘아기 사자’, ‘아기 독수리’로 불리며 신인 때부터 주목받았다. ‘잠재력 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올 시즌 만개한 모습이다. 게다가 올해 신인왕 레이스를 뜨겁게 달구는 투수도 있다. 이의리(19·KIA 타이거즈)가 2승(2패), 평균자책점 4.50이고, 이승현(19·삼성)은 2홀드, 평균자책점 0.84로 잘 던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야구에 대형 신인 투수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대회를 앞뒀을 때만 해도 쓸 만한 20대 초중반 투수가 없어 대표팀 관계자들이 걱정했다. 김인식 당시 대표팀 감독은 “10년 가까이 내로라하는 젊은 투수가 없다. 사실상 전멸에 가까워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2019년 우완 이영하(24·두산 베어스)는 17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부상했다. 잠수함 투수 정우영(22·LG 트윈스)은 그해 불펜에서 활약하며 신인왕이 됐다. 지난해에는 좌완 투수 소형준(20·KT 위즈)이 13승 6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그는 압도적 지지로 신인상을 받았다. 구창모(24·NC 다이노스)도 지난해 마운드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9승, 평균자책점 1.74로 활약했다. 소형준과 구창모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해, KBO리그를 이끌 에이스로 꼽혔다.
한동안 사라졌던 영건 투수가 매년 등장하는 건 반갑다. 다만 아직은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영하는 지난 시즌 성적이 뚝 떨어졌다. 소형준과 구창모는 올 시즌 나란히 부진하다. 소형준은 9경기에 나와 2승(2패), 평균자책점 4.93이다. 소형준은 5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2승을 따냈지만, 계속 꾸준한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구창모는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아 아예 나오지 못한다. 이동욱 NC 감독은 “구창모가 최근 캐치볼을 했는데 미세한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불안감이 있어 언제 등판할지 계획이 서지 않는다. 어렵다”고 걱정했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매 시즌 폭발적 투구를 보여주는 건 쉽지 않다. 류현진(34·토론토 블루제이스)처럼 신인 때부터 큰 고비 없이 최고 피칭을 보여주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신예 투수 대부분은 한 시즌 잘하면 다음 시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2년 차 증후군(sophomore jinx)’에 시달리곤 한다.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나오는 타자에게 맞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를 극복한다면 ‘대형 투수’가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반짝 투수’가 된다.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는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 등도 프로에 와서 초반에는 기복이 있었다. 잘 던지다가도 부상과 슬럼프로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지 못한 시즌도 있었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절차탁마한 끝에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됐고 꿈의 무대 MLB에 진출했다
반짝 떠오른 영건을 꾸준한 에이스로 키우려면 지도자의 기다림과 믿음도 필요하다. 구창모를 대형 투수 재목으로 점찍었던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NC 감독 시절 선발투수 기회를 10차례나 주기도 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소형준이 힘들어해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이 고비를 정면 돌파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면 평범한 투수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