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프로야구 KBO리그 키움히어로즈와 LG트윈스의 경기가 16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7회말 1사 1,3루 이정후가 역전 적시타를 치고 1루에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1.06.16/ 아버지를 넘어서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 아버지가 '바람의 아들' 이종범(전 KIA)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종범은 1994년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고 개인 통산 도루왕 4회, 득점왕 5회 등 굵직굵직한 이력을 남긴 스타플레이어다. 선수 시절 달았던 등 번호 7번은 타이거즈 구단의 영구결번이기도 하다. 야구선수의 길을 택한 아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큰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의 손자'는 부담을 극복하고 아버지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키움 이정후(23)는 지난 20일 KBO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창원 NC전 3번·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5회 선두타자 홈런으로 개인 통산 800안타 고지를 밟았다. 597경기, 22세 10개월의 나이로 800안타를 때려내 이 부문 최소경기, 최연소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종전 최소경기는 아버지 이종범이 보유한 615경기, 최연소는 '국민타자' 이승엽의 23세 10개월 12일이었다. 1군 데뷔 다섯 시즌 만에 거둔 성과였다.
될성부른 떡잎에 가깝다. 이정후는 데뷔 첫 시즌인 2017년 179안타를 기록했다. 1994년 서용빈(당시 LG)이 세운 신인 최다안타 기록을 23년 만에 경신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듬해 어깨 부상 영향으로 163안타에 그쳤지만, 2019년 개인 한 시즌 최다인 193안타를 추가했다. 두산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당시 197개)와 마지막까지 최다안타 타이틀 경쟁을 벌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에도 181안타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갔다. 데뷔 첫 네 시즌 타율이 무려 0.336다.
타격과 수비, 주루 모두 수준급이다. 데뷔 초창기에는 정확도만 높은 타자였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해 몸집을 키웠다. 그 결과 장타력까지 크게 향상됐다. 지난해 개인 첫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냈고, 5할대 장타율까지 넘기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올 시즌엔 홈런이 줄었지만, 수준급 장타율(0.524→0.519)을 유지하고 있다.
선구안까지 탁월하니 출루 횟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시즌 출루율이 4할 4푼대로 리그 4위권. 무결점 타자에 가까운데 그 중 으뜸은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느새 그의 이름 앞에 '타격 기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21프로야구 KBO리그 키움히어로즈와 LG트윈스의 경기가 17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5회말 2사 만루 박병호의 역전 3타점 적시 2루타때 홈인한 이정후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1.06.17/ 다음 목표는 최소경기 1000안타 달성이다. KBO리그 최소경기 1000안타는 이종범이 2003년 6월 21일 779번째 경기에서 달성한 기록이 아직 남아있다. 경기당 1.34개씩 안타를 추가하고 있는 이정후의 페이스를 고려하면 신기록 작성이 충분히 가능하다.
아울러 이승엽이 보유한 최연소 1000안타(25세 8개월 9일)도 무난하게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의욕이 크다. 그는 "800안타를 기록한 줄도 몰랐다. 800안타도 기쁜데 최소경기와 최연소 기록이라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1000안타 최소경기 달성이 아버지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목표로 계속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혜택을 받았다. 해외 진출을 하지 않고 꾸준히 KBO리그에서 활약한다면 손아섭(롯데·1226경기)과 장성호(당시 KIA·29세 7개월)가 세운 최소경기, 최연소 1500안타 기록도 그가 깰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 나아가 역대 11명만 정복한 2000안타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후는 올해 수비 포지션을 전환했다. 익숙한 우익수가 아닌 중견수로 출전해 센터라인의 중심을 잡는다. 빠른 타구 판단과 발을 앞세워 중견수 수비에서도 빈틈이 없다. 그 결과 지난 16일 발표된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 최종엔트리(24명)에 무난히 이름을 올렸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김재환(두산)과 나성범(NC) 등을 제치고 김경문 대표팀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외야수로는 박건우(두산), 김현수(LG), 박해민(삼성)과 함께 포함됐고 이정후는 주전 중견수가 유력하다.
그의 성장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1년 후배 강백호(KT)와 함께 KBO리그 대표할 타자로 우뚝 섰다. '바람의 손자'가 쌓아갈 기록들은 무궁무진하다. 최연소, 최소경기 800안타 기록은 전초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