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피렐라의 삼성 입단이 확정됐을 때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피렐라는 2020시즌 일본 프로야구(NPB) 히로시마 구단과 계약해 아시아리그에 도전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9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6, 11홈런, 34타점을 기록한 뒤 재계약에 실패했다.
삼성으로선 부담이 큰 영입이었다. 2016시즌의 악몽이 떠오를 수 있었다. 그해 삼성은 NPB 경력자 아롬 발디리스와 계약했다. 발디리스는 부상에 부진까지 겹쳐 44경기만 뛰고 퇴출당했다. 그와 비슷한 이력의 피렐라였지만, 허삼영 삼성 감독은 "2년 전에도 (영입) 대상자였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NPB 경험이 KBO리그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피렐라는 감독의 기대대로 안착했다. 아니 그 이상이다. 22일까지 6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3(264타수 88안타), 16홈런, 55타점을 기록했다. 장타율(0.568)과 출루율(0.390)을 합한 OPS도 0.958로 수준급.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삼성 타선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선두 경쟁의 원동력 중 하나다.
KBO리그를 처음 경험하는 외국인 타자는 보통 '적응기'를 거친다. 삼성 구단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평가받는 다린 러프(2017~19)는 계약 첫 시즌 2군을 다녀오기도 했다. 개막 후 출전한 18경기 타율이 0.150(60타수 9안타)에 불과했다. 2군에서 조정기를 거친 뒤 1군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피렐라는 곧바로 KBO리그에 적응했다.
피렐라는 "한국야구와 일본야구가 비슷한 점이 많다. 아시아권이라서 문화도 비슷한 것 같다"며 "(일본에서 한 시즌을 뛴 게) 한국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실패로 끝난 2020시즌 NPB에서의 1년이 삼성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 셈이다. 그는 "투수 유형은 비슷하지만 일본에 좋은 투수가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가 많아 공략이 까다로웠다. 한국 투수들도 제구가 좋지만 이전 경험(NPB)이 도움된다"고 강조했다. 피렐라에 따르면 KBO리그는 나이가 어린 투수들이 많지만, NPB는 기량이 뛰어난 베테랑이 많다.
타고난 성실함도 좋은 무기다. 피렐라는 삼성 동료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베이스러닝에 적극적이다. 평발에 따른 불편함을 안고 있지만, 그라운드만 들어서면 한 마리 황소가 된다. 그는 "리그가 다르다고 해서 특별히 더 준비하는 건 없다. 다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경기 전후로 많은 준비를 하고 그걸 경기장에서 100%로 쏟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이어 "평발이라 주루하는 데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경기 전후로 트레이너들이 잘 관리해준다. 덕분에 경기에 지장도 없다. 많은 도움이 된다"고 공을 돌렸다.
삼성은 매년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NPB를 거쳐 KBO리그에 입성한 피렐라가 '효자'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