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27)가 메이저리그를 뒤흔들고 있다. 단순히 이도류이기 때문이 아니다. 160㎞ 강속구와 리그 최고의 스플리터 때문만도 아니다. 리그 정상급의 장타력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28일(한국시간) 탬파베이전에서 시즌 스물다섯번째 홈런을 쏘아올리며 홈런 선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6홈런)를 바짝 뒤쫓았다. 아시아 선수로는 전례없는 홈런 페이스다. 추신수의 24홈런(2019년) 기록을 넘어섰고 한 시즌 최다 기록인 마쓰이 히데키의 31홈런(2004년)을 넘어서는 것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주변의 시선을 깨부수고 지켜온 투타겸업으로 만든 성과이기에 더 값지다. 장훈, 스즈키 이치로, 다르빗슈 유 등 일본 야구계 선배들로부터 투수와 타자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충고에 흔들리지 않고 투수와 타자 모두 정상급의 성적을 거두는 중이다.
특히 타격 성적이 눈부시다. 오타니를 아직 리그 최고의 투수라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리그 최고의 타자로는 꼽힐만 하다. '야구인의 몸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보강한 탈(脫)아시아적 신체를 바탕으로 오타니가 베이브 루스 이후 100여년간 나오지 않았던 야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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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오타니, 핵심은 하반신 보강
28일 기준 타자 오타니는 25홈런과 59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타율은 0.277로 낮지만, 출루율 0.363, 장타율 0.668,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1.031에 달한다. 타격 7관왕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와 홈런왕, MVP 경쟁을 당당히 벌이고 있다.
지난해 부진을 생각하면 괄목상대할 성적이다. 지난해 오타니의 성적은 44경기 7홈런 24타점, 타율 0.190, 장타율 0.366에 불과했다. wRC+(조정 득점 생산력)는 82로 리그 평균(100)에도 미치지 못했다. 투타 겸업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2019년부터 그를 괴롭혔던 왼쪽 무릎이 문제였다. 미국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오타니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세웠던 핵심 목표는 하체 재건이었다. 오타니는 2019년 왼쪽 무릎의 이분 슬개골 수술을 받고 2020년 복귀했다. 부상은 완전히 회복했지만, 회복 기간 약해진 하체가 문제였다. 하체가 받쳐주지 못하니 스윙 메커니즘도 무너졌다. 디 애슬레틱은 “지난 시즌 오타니는 약해진 하체 탓에 발이 자꾸 타석을 벗어났다”라며 “조 매든 감독이 다리를 묶어야 하겠다고 농담할 정도였다”라고 2020시즌 오타니가 겪었던 문제를 소개했다.
지난겨울 오타니는 시애틀에 있는 야구 연구소 '드라이브 라인'에서 몸을 만들었다. 트레버 바우어, 마이크 클레빈저, 클레이턴 커쇼, 켄리 젠슨 등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데이터 분석 트레이닝을 위해 찾았던 시설이다. 투수로 돌아오기 위해 투구폼을 교정하고 구속을 끌어올렸다면, 타자로 돌아오기 위해선 부상 전 몸 상태로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디 애슬레틱은 “오타니는 비시즌 동안 신체적 출력을 최대화하고 한 시즌 동안 투타 겸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살펴봤다”면서 “드라이브 라인을 통해 몸을 재정비했고 식이요법 계획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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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장타자, 드디어 재능 만개
이도류, 160㎞ 강속구에 묻히기 쉽지만, 부상 전 오타니가 증명한 타격 재능은 메이저리그 최정상 수준이다. 2019년까지 오타니가 기록한 성적은 40홈런 123타점, 타율 0.286, 장타율 0.532, OPS 0.883으로 리그 평균과 비교한 OPS+(조정 OPS)는 133에 달한다.
결과지표가 아닌 과정지표로 보면 더욱 빛난다. 메이저리그 타구 데이터를 제공하는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2018시즌 오타니는 배럴 타구 비율 16.4%(리그 상위 2%), 평균 타구 속도는 92.9마일(약 149.5㎞, 리그 상위 4%), 최고 타구 속도는 113.9마일(약 183.3㎞, 리그 상위 7%), 강한 타구 비율(HardHit%) 50.4%(리그 상위 4%)를 기록했다. 전성기 알버트 푸홀스, 마이크 트라웃처럼 높은 타율과 장타력, 선구안이 모두 완벽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고의 타구를 만들어내며 트라웃과 함께 에인절스 타선의 선봉에 섰다.
하체 보강에 성공한 올해는 신인왕 시절 타격 기량을 완벽히 되찾은 것은 물론 한층 더 발전했다. 타구는 한층 더 빨라졌다. 평균 타구속도는 93.5마일(약 150.5㎞, 리그 상위 3%)로 1마일 가까이 빨라졌고 최고 타구속도는 무려 119마일(약 191.5㎞, 리그 상위 1%)에 달한다. 배럴 타구 비율도 50% 가까이 증가한 24.3%(리그 상위 1%)에 달한다. HardHit%도 56.2%(리그 상위 1%)로 약 12% 증가했다. 발사 각도도 올라갔다. 올 시즌 평균 발사각도는 16.4도로 2018년보다 4도 이상 올랐다. 강한 타구가 더 높이 뜨니 장타가 양산되는 것은 자명했다. 타구만으로 판단하는 기대 장타율은 라이벌 게레로를 능가한다. 오타니의 기대 장타율 0.657로 실제 성적보다 다소 낮지만, 선두 게레로(0.630)보다 높다. 강한 타구 생산력만 따진다면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라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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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이었던 타자 재능이 꽃펴... MVP 도전
커리어 내내 부족했던 프로 타격 경험이 쌓인 것도 진화한 요인으로 추정된다. 하나마키히가시 고교 시절부터 타격 재능은 투수 못지않았다. 이미 2학년 때 대회 타율 4할 이상을 기록했다. 2경기에 출전했던 고시엔 본선에서도 타율 0.333, 출루율 0.556, 장타율 0.833 1홈런으로 초고교급 파괴력을 선보였다.
정작 프로 진출 이후에는 많은 타석을 경험하지 못했다. 일본 프로야구(NPB) 니혼햄에서 뛴 5년 동안 통산 비율 성적은 타율 0.286, 출루율 0.358, 장타율 0.500으로 뛰어났지만, 타석수는 1170타석에 불과하다. 단 한 번도 규정 타석을 소화하지 못했다. 2016년(382타석)을 제외하면 300타석을 소화한 시즌조차 없다. 완성도가 떨어졌던 투수 훈련에 집중했고 타자 출전도 적었다.
적었던 경험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 변수였다. 데뷔 첫해엔 좌완 투수 상대 약점(좌완 투수 상대 OPS 0.654)을 보이면서 일부 플래툰 적용을 받아야 했다. 2019년에는 5월 극심한 부진(OPS 0.692)을 겪다 적응하며 뜨거운 6월 타격감(OPS 1.091)으로 극복했다. 부상 이력도 더해졌다. 2018년 토미 존 수술, 2019년 왼쪽 무릎 슬개골 수술로 커리어 내내 부상과 수술을 겪으며 자연히 적응 기간이 더 길어졌다.
반면 올해는 부상 없이 시즌 절반가량을 소화한 가운데 어느덧 292타석에 들어섰다. 이상만 없다면 400타석 이상 소화가 확실하다. 메이저리그 누적 타석도 어느덧 1259타석에 이르렀다. 타석도, 메이저리그의 투수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최근 5년간 리그를 대표했던 주요 강타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50홈런 이상을 기록했던 지안카를로 스탠튼과 애런 저지의 커리어하이에 버금가는 타구 속도를 기록 중이다. 배럴 타구 비율 24.3%는 최근 5년 통틀어 2017년 애런 저지 다음가는 독보적인 2위 기록이다. HardHit%도 최근 5년 중에 2020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62.2%), 미구엘 사노(57.3%)를 제외하면 올해 오타니를 넘어서는 타자를 찾아볼 수 없다. 이도류기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타자 오타니가 MVP 후보로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