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업을 앞세운 'KK'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2021 메이저리그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김광현은 11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5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 쾌투로 6-0 승리를 이끌었다. 선발 3연승을 질주한 김광현은 시즌 4승(5패)째를 따내며 평균자책점을 3.11(종전 3.39)까지 낮췄다. 7월에 선발 등판한 3경기 평균자책점이 0.50(18이닝 1실점)에 불과하다.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 선발 투수 중 가장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전반기 마침표를 찍었다.
김광현은 6월 중순 '위기의 남자'였다. 6월 21일 애틀랜타전(4이닝 3피안타 1실점)과 26일 피츠버그전(4⅓이닝 7피안타 4실점)에서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비율이 70% 안팎으로 높았다. 특히 피츠버그전에선 두 구종의 비율이 무려 85%였다. 커브(8개)와 체인지업(2개) 비율은 낮았다. 타자는 타석에서 빠른 공과 슬라이더 두 가지만 대처하면 됐다. 같은 타자를 여러 번 상대 해야는 선발 투수의 특성상 긴 이닝을 책임지기 힘들었다. '투 피치' 유형은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 투수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로 김광현이 풀어내야 할 숙제였다.
변화가 통했다. 지난 1일 애리조나전에서 반등한 김광현은 6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180도 달라진 투구 레퍼토리를 보여줬다. 비중이 거의 없던 체인지업 비율을 17%까지 끌어올렸다. 타자들은 혼란스러웠고 7이닝 3피안타 무실점 쾌투로 시즌 3승 사냥에 성공했다. 김광현은 11일 컵스전에선 '스리 피치' 투수였다. 포심 패스트볼(42개)과 슬라이더(31개) 비율이 여전히 높았지만, 커브 구사를 줄이고 체인지업(15개)을 높였다.
고비마다 체인지업이 빛났다. 볼카운트를 잡는 유인구는 물론이고 위닝샷으로도 활용했다. 김광현은 컵스전 1회 말 1사 후 연속 피안타로 1, 2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4번 타자 하비에르 바에스를 4구째 2루수 병살타로 유도했다. 볼카운트 2볼에서 3구째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한 뒤 4구째 포심 패스트볼로 의표를 찔렀다. 2회 선두타자 패트릭 위즈덤을 상대해선 2스트라이크에서 3, 4구째 연속 체인지업 이후 5구째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결정구를 던지기 전 '셋업 피치'로 체인지업이 위력적으로 꽂혔다.
1-0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4회 말 2사 2루에서도 체인지업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이안 햅과 풀카운트 승부를 펼쳤고 6구째 79.5마일(127.9㎞)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5구째 포심 패스트볼에 이은 강약 조절이 돋보였다. 김광현은 5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도 윌슨 콘트레라스에게 체인지업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메이저리그(MLB)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이날 김광현의 체인지업 중 타자가 스윙한 건 11개. 이 중 헛스윙이 7개(64%)였다. 포심 패스트볼(19%)이나 슬라이더(21%)보다 월등히 많은 헛스윙을 끌어내 이닝 소화에 큰 도움을 줬다. '투 피치'만 생각한 컵스 타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김광현은 경기 뒤 "체인지업에 스윙이 많이 나왔다는 건 긍정적이다. 직구(포심 패스트볼)와 슬라이더 이외 구종을 (KBO리그에서) 연습하고 훈련했던 게 지금 와서 잘 써먹는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이어 "경기 전부터 (포수인) 몰리나가 낮게 던지자는 얘길 많이 했다. 오늘 (포수 사인에) 고개를 한 번도 흔들지 않았는데 체인지업을 받아보고 좋으니까 사인을 많이 냈던 거 같다. 결과도 좋았다"며 "체인지업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기지 않았나 싶다. 자신 있게 던지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LB 전문가인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체인지업 비율이 아주 높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 주자가 없을 때는 체인지업과 커브를 섞고 주자가 있을 때는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자주 던졌다"며 "체인지업이 구사가 엄청 많아진 건 아니지만 던질 때가 확실히 구분된 느낌이었다. 제구도 좋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