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직장인 A(27) 씨는 지난달 큰맘 먹고 삼성전자 '비스포크 그랑데 세탁기 AI 24㎏'과 '비스포크 그랑데 건조기 AI 17㎏'을 집에 들였다. 최신 제품이라 의심 없이 사용했는데, 총 10벌의 옷이 찢어지거나 색이 변했다. 문의를 받고 방문한 AS(사후처리) 기사는 통 내부를 한번 살핀 뒤 제품 문제는 아니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월 디자인을 바꾸고 인공지능(AI) 기능을 강화한 그랑데 세탁기·건조기 신제품을 출시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수직으로 쌓아 동선을 줄이고 디자인 일체감을 준 것이 특징이다. 당시 삼성전자가 강조한 기능 중 하나는 섬세한 소재의 세탁물이 감지되면 세제의 거품을 늘리고 모터 회전을 줄여 옷을 보호하는 'AI 맞춤 세탁'이다.
A 씨는 롯데하이마트 오리점에서 삼성전자 세탁기·건조기·의류관리기·냉장고를 프로모션가 702만원에 구매했다. 처음 셔츠에서 작은 구멍을 발견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2주째 같은 현상이 이어지자 '문제'라고 인식했다.
A 씨는 "약하거나 상하면 안 되는 옷은 돌리지 않는다. 바지는 버클이나 지퍼가 있으면 채워서 뒤집은 뒤에 넣는다"며 "타사 제품을 사용했을 때는 똑같이 써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A 씨의 셔츠 6벌, 바지 1벌이 찢어졌다. 셔츠 2벌, 바지 1벌은 변색됐다.
세탁 후 곧바로 건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쪽 문제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AS 기사를 불렀다. 하지만 스타킹을 손에 씌운 뒤 통 내부를 훑어 날카로운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AS 기사는 변색과 관련해서는 "세탁기와 건조기 부품은 오일과 같은 화학적 액체를 쓰지 않는다. 오로지 물만 있어 변색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문제는 그랑데 세탁기나 건조기에서 옷이 훼손되는 것이다. 통 내부에 이상이 없었는데도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
AS 기사는 "변형되지 않은 흰색 수건 4~5장을 여러 차례 돌려보고 또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며 "그때 다시 출동해 문제가 확인되면 보고해 교환이나 환불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원인 파악을 소비자에게 넘긴 것이다. 당연히 부드러운 재질의 수건을 돌렸을 때는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흰색 옷은 따로 빼고 청바지는 뒤집는 정도로 빨래 준비를 한다. 옷이 찢어지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AS 기사는 A 씨에게 "옷이 건조기에 들어가면 섬유가 줄어들었다가 늘어난다. 약간 훼손된 옷이 들어가면 열을 받아서 구멍이 더 커진다"고도 말했다.
삼성전자는 제품에는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찢어진 부분 주위에 하얗게 변색된 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화학성분에 따른 훼손으로 보인다"며 "고객이 원하실 경우 기술팀 인력을 추가로 파견해 면밀히 점검해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억지로 상황을 재현할 수 없는 A 씨는 환불은커녕 교환도 못 받는 상황이다. 거의 모든 빨래를 일일이 세탁 망에 넣어 돌리자 문제는 사라졌지만, 건조를 마쳐도 축축하거나 구겨진 상태로 말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