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이 개막했다. 일주일 전만해도 사상 최악의 '불안한 스포츠 축제'로 불리며 관심이 없는 분위기였으나, 막상 올림픽이 시작하자 주요 경기를 찾아보고, 메달 소식에 손뼉을 친다. 국민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땀과 눈물, 열정을 보며 또 한 번 스포츠의 매력에 흠뻑 젖는다. 올림픽에서 선수만 겨루는 것은 아니다. 각국 유니폼 제작에 참여한 브랜드도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유니폼 속에 그 나라가 스포츠를 대하는 철학과 전통, 기술력이 모두 담기는 만큼 각 브랜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도쿄올림픽을 준비했다. 본지가 도쿄올림픽 화제의 단복을 소개한다.
한국과 라이베리아…기능·디자인·철학
흔히 국가대표팀이 입는 옷을 떠올리면 개·폐회식용 정장과 경기 유니폼을 떠올린다. 그러나 선수들이 경기장은 물론 선수촌 안에서 입는 모든 옷과 장비(신발·가방·모자) 등이 대표팀 공식 단복의 범주에 든다.
대한민국 대표팀 공식 단복은 영원아웃도어의 '노스페이스'가 제작했다. 정장을 제외한 일체를 노스페이스가 책임진다. 2016 리우올림픽 때만 해도 삼성물산의 '빈폴' 등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팀 코리아' 공식 파트너 자격으로 정장을 제작했으나, 올해는 빠졌다. 도쿄올림픽 정장은 코오롱FnC 남성복 브랜드 '캠브리지 멤버스'가 공급만 맡았다.
노스페이스는 한국 대표팀 단복 제작에 애착을 갖고 있다. 디자인은 물론 기술력으로 상징되는 퍼포먼스, 친환경까지 노스페이스가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을 단복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노스페이스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4괘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과 함께 일본 특유의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냉감, 발수·투습, 흡속·습건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원단이다. 노스페이스가 공급하는 17개 품목 중 13개에 리사이클링 원단과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라이베리아 대표팀 단복도 화제다. 서아프리카 한 쪽에 자리 잡은 라이베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도 단 두 명의 선수만 출전한다. 선수보다 스태프 숫자가 더 많다. 라이베리아는 이번 올림픽에 앞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단복 스폰서를 구했다. '텔파'였다. 텔파는 라이베리아계 미국인 텔파 클레멘스가 2005년 론칭한 브랜드다. 그는 1990년 라이베리아 내전을 피해 부모와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텔파는 일명 '비건 가죽 가방'으로 할리우드 스타와 패셔니스타의 사랑을 받고 있다.
텔파는 라이베리아의 스폰서 요청을 받자마자 고민 없이 각종 지원과 단복 제작 및 공급을 약속했다. 텔파는 이번 기회로 론칭 후 처음으로 스포츠 의류 라인을 갖게 됐다. 클레멘스는 약 4개월 동안 70여 개 품목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포브스와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은 텔파가 라이베리아 대표팀 스폰서를 맡게 된 배경은 물론 개성 있고 아름다운 디자인까지 칭찬 일색이다.
호불호 극명…이탈리아와 캐나다
유명한 예술작품도 그 가치를 몰라보는 이에게는 한낱 휴짓조각일 수도 있다. 이탈리아와 캐나다 대표팀 단복이 그렇다.
이탈리아 단복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맡았는데, 도쿄올림픽 개막식부터 악평에 시달렸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국기를 원형으로 디자인해 유니폼에 새겼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유명 비디오 게임 '팩맨'을 연상시킨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탈리아 선수단의 독특한 유니폼을 도쿄올림픽 개막식의 주요 장면 중 한 컷으로 선택할 정도로 인상 깊었다.
아르마니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 선수단이 입는 옷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런데 화제에 오른 팩맨 트레이닝복은 도통 찾기 힘들다.
캐나다는 '허드슨 베이'가 제작을 맡았다. 파격적이다. 보통 대표팀 유니폼이 정장과 운동복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허드슨 베이는 데님 재킷을 선보였다. 데님 재킷 곳곳에는 그래피티로 각종 문양과 그림을 새겼다. 허드슨 베이 측은 모든 품목에 일본의 스트리트 스타일 미학과 캐나다의 현대적인 '쿨 스타일'을 녹였다고 설명한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허드슨 베이 홈페이지에는 "최고의 옷이다", "개성 있다"는 글도 있지만 "최악이다", "캐나다에 의류 브랜드가 여기 말고 없나", "끔찍하고 당황스러운 디자인"이란 악평이 공존한다. 허드슨 베이는 현재 논란의 데님 재킷을 20% 할인가에 판매 중이다.
욱일 흔적? 논란 중심 일본
개최국 일본은 욱일기의 모티브인 태양을 포기하지 못한 분위기다. 일본 대표팀 단복은 일본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와 정장 브랜드 '아오키'가 맡았다.
아식스는 "일본 대표팀이 자부심을 느껴서 힘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며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밀고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강력한 힘을 표현하는 '선 라이즈 레드' 컬러를 중심으로 일본 전통문화를 표현한 그래픽을 넣은 디자인이 눈에 띈다. 크고 작은 점과 선, 채도가 다른 붉은색을 여러 개 섞은 것도 특징이다.
욱일기 디자인 논란은 일본 골프 대표팀 유니폼에서도 흘러나온다.
일본은 지난 5월 말 적색·청색·분홍색 등을 반영한 골프대표팀 유니폼을 공개했다. 상의 45도 방향의 붉은 줄무늬가 전면에 새겨있어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이 일었다. 일본골프협회는 "항상 높은 곳을 목표로 도전하는 자세를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토리 미치코 일본 여자대표팀 코치는 "기울어진 줄무늬는 일본의 태양이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했다. 협회와 코치 사이에 손발이 참 안 맞는다.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자 주요 전범국인 일본 제국주의 해군의 군기다. 10년 넘게 욱일기 퇴치와 독도 수호 운동을 해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욱일기는 전범기다. IOC는 도쿄올림픽 기간에 욱일기 사용을 못 하도록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