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인천국제공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했다. 많은 축하 속에 귀국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뒤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한 여성이 김정환에게 다가가 수줍게 꽃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이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김정환은 목에 걸고 있던 금메달을 이 여성에게 걸어줬다. 김정환은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고 당당하게 아내 변정은(34) 씨와 포옹했다. 변 씨는 "남편이 정말 멋지다"라고 웃었다.
김정환은 지난해 9월 항공사 승무원 변정은 씨와 결혼했다. 아내와는 은퇴 훈 인연을 맺어 1년여 열애를 했다. 변 씨는 "국제대회 펜싱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 건 이번 올림픽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핸드폰을 통해 지난 영상을 봤을 뿐"이라며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더 힘든 운동인 것 같았다"고 했다.
김정환은 피스트에 넘어지고 상대 공격에 뒤통수를 찔려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다시 일어서 메달을 땄다. 아내는 "안쓰러웠지만 자랑스럽더라"고 기뻐했다.
그가 다시 검을 들게 된 계기도 아내였다. 김정환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딴 뒤 은퇴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멋진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변정은 씨는 연애 초기 남편이 펜싱 선수인건 알고 있었지만, 펜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을 만큼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잘 몰랐다. 후배 자리를 빼앗을까 봐 잠시 망설이기도 한 김정환은 올림픽을 목표로 다시 피스트에 오르기로 했다. 김정환은 "혼자였을 때 나간 올림픽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준비하는 올림픽은 기분이 사뭇 다르더라"고 했다. 그는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고 당당하게 돌아왔다. 변정은 씨는 "처음 만났을 때 펜싱 선수인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떤 (성적을 올린) 선수였는지 잘 몰랐다"며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제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선수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 멋진 선수인 것 같다"고 자랑스러워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의 새 역사를 썼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16년 리우올림픽 개인전 동메달을 이미 갖고 있다. 도쿄 대회에서도 메달을 딴 그는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3회 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또 남자 단체전 금메달까지 땄다. 한국 펜싱 역사상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가 됐다.
김정환은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은퇴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펜싱은 순발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이고, 김정환은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남현희는 그런 대표팀 후배 김정환을 보며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한 구본길은 "(김)정환이 형이 파리(올림픽)를 안 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는 정환이 형을 끌고 가려고 한다. 2연패를 했으니 3연패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정환은 개인전 동메달을 딴 뒤 혼자 결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은퇴 여부는 아내와 상의하고 결정하겠다"며 웃었다.
김정환의 현지 인터뷰와 구본길의 귀국 인터뷰를 모두 접한 변정은 씨는 남편의 결정을 존중한다. 변 씨는 "저는 체력이 된다면 남편이 (파리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에 경기 모습 보니까 부상도 있고 너무 힘들어 보여서"라며 말끝을 흐린 뒤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달콤한 신혼 생활도 얼마 함께하지 못했다. 김정환이 오랜 기간 합숙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변정은 씨는 "지난해 9월 결혼한 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지만 신혼 생활은 제대로 못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특별한 계획은 없다"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