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한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3·키움 히어로즈)의 야구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정후는 4일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일본 선발 투수 '동갑내기' 야마모토 요시노부(23·오릭스 버팔로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의 악연은 2019년 11월 17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정후는 프리미어12 결승 한·일전 3-5로 뒤진 8회 초 야마모토에게 3구 삼진을 당했다. 경기마저 일본에 패해 더 큰 아픔으로 남았다. 이번 대회에 앞서 이정후는 "공이 정말 좋았고 구종까지 다 기억한다. 야마모토와 다시 만나면 이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정후는 도쿄올림픽에서 성사된 '리턴 매치'에서 설욕했다. 야마모토와의 세 차례 맞대결에서 안타 2개를 뽑아냈다. 1회 1사 1루에선 2루타, 6회 무사 1루에서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우전 안타를 뽑아냈다. 4회 루킹 삼진을 당했지만 2년 전처럼 허무한 결과는 아니었다.
매 타석 파울을 만들어내며 끈질기게 대결했다. 야마모토가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공에 스플리터와 커브를 섞어 배트를 유인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2-5로 패했지만, 그와의 승부만큼은 이정후가 판정승을 거뒀다. 이정후는 경기 뒤 "좋은 투수와 상대한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라며 "전력분석에서 좋은 자료를 줬고 전략을 잘 짜고 들어가 좋은 타구가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목표한 걸 이뤄내는 '야구 천재'다. 2017년 프로에 데뷔한 뒤 빠르게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기록한 타율이 0.338이다. 이 기간 박민우(NC 다이노스·0.343)에 이어 리그 전체 타격 2위. 하지만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약점으로 지적받은 장타력을 보강하기 위해 2020년 스프링캠프 때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무리하게 웨이트로 몸을 만들면 자칫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있지만, 이정후는 아니었다.
결과는 바로 그라운드에서 나타났다. 2020시즌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15개)을 때려냈고 세 자릿수 타점(101개)까지 넘겼다. 타격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장타 능력까지 장착한 완성형 타자로 발돋움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 타구추적시스템(HTS)에 따르면, 인플레이 타구 기준 2019년 15.8도이던 발사각이 17.9도까지 올라갔다. 그만큼 공을 더 잘 띄웠고 타구에 힘이 실리면서 장타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남들은 정확도와 파워, 하나도 하기 힘들어하는 걸 데뷔 5년 차에 다 해낸 셈이다.
이정후는 이미 KBO리그의 간판선수로 성장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선 일찌감치 병역 혜택까지 받아 탄탄대로가 열렸다. 지난 6월에는 597경기, 22세 10개월의 나이로 800안타를 때려내 이 부문 최소경기, 최연소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종전 최소경기는 아버지 이종범이 보유한 615경기, 최연소는 '국민타자' 이승엽의 23세 10개월 12일이었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스즈키 이치로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선수가 이정후다. 주루와 수비, 콘택트 능력까지 모두 준수하다. 나이가 어리다는 걸 고려하면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