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21)에게 도쿄올림픽은 기회이자 고비였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기쁨도 잠시. 휴식 없이 시즌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 컸다.
원태인은 매년 후반기가 아쉬운 선수였다. 전반기를 잘 치른 뒤 후반기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데뷔 시즌인 2019년 전반기에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했으나, 후반기엔 9.45로 고꾸라졌다. 지난해에도 다르지 않았다. 전반기 5승(2패)을 따냈지만, 후반기 1승(8패)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올 시즌을 시작하며 원태인은 “체력 문제가 가장 컸다. 2019년에도 비슷한 문제를 경험해 나름대로 준비했다. 그런데도 부족했다”며 “한 시즌을 치르면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체력 저하는 투구 폼의 변형, 투구 각의 변화로 이어져 구위가 떨어지는 결과로 연결됐다. 그는 “유산소 운동도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 몸을 키우고 힘도 늘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올 시즌 원태인은 세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전반기 무려 10승(4패)을 따내 리그 다승 1위로 반환점을 돌았다.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전반기에 달성할 정도로 페이스가 가팔랐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 건 후반기 성적이었다. 그런데 도쿄올림픽이라는 대형 변수가 더해졌다. 대회 기간(7월 23일~8월 8일) 리그가 중단돼 다른 선수들은 한숨 돌릴 여유가 있었지만, 원태인은 아니었다. 전반기 일정이 끝난 다음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해 구슬땀을 흘렸다.
도쿄올림픽에서 그는 보직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대표팀 대회 첫 경기인 이스라엘과 조별리그 1차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이후에는 불펜 투수로 대기했다. 대회 기록은 4경기 평균자책점 8.44(5와 3분의 1이닝 5실점). 생소한 불펜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컨디션이 들쭉날쭉했다. 야구대표팀이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해 개인 성적만큼이나 큰 아쉬움을 안고 귀국했다. 더 큰문제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체력 부담이었다.
원태인은 우려를 불식했다. 지난 20일 대구 SSG 랜더스전에서 시즌 11승째를 올렸다. 후반기 첫 등판에서 6이닝 7탈삼진 2실점 쾌투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정신적·체력적 소진은 있었다. 하지만 소속팀에 합류한 뒤 로테이션을 한 번 쉬고 그 기간 체력을 보충했다. 크게 힘들거나 처지는 건 없었다”며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값진 경험을 했다”고 돌아봤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후반기 첫 번째 선발 로테이션에서 원태인을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임시 선발’을 투입했다. 누구보다 원태인의 체력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렸다.
후반기 시동을 건 원태인의 다음 목표는 다승왕이다. 다승 1위 키움 히어로즈 에릭 요키시(12승)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삼성 투수가 다승왕에 오른 건 2013년 배영수(14승)가 마지막이다. 매년 반복된 후반기 부진을 털어낸다면 원태인은 다승왕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그는 “승리는 내가 원해서 되는 게 아니다. 대신 다승왕 레이스를 한다는 건 팀 승리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다승왕을 목표로 던지겠다”고 굳은 각오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