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대규모 손실을 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중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에서 이겼다. 손 회장에게 내린 징계의 근거에 대해 재판부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손 회장의 승소에 비슷한 사유로 징계받은 다른 금융사 CEO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다.
2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손 회장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낸 DLF 관련 '문책 경고' 등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금감원의 제재 사유 5개 가운데 '금융상품 선정절차 마련 의무 위반'만 인정되고, 다른 4개 사유는 모두 인정되지 않아 금감원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수가 없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DLF는 금리·환율·신용등급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펀드다. 2019년 하반기 글로벌 채권 금리가 급락하면서 미국·영국·독일 채권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S와 이에 투자한 DLF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DLF를 불완전 판매하고, 경영진의 내부통제에도 부실했다며 손 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 처분을 내렸다. 문책 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을 경우, 연임과 금융권 취업은 제한된다.
우리금융 측은 “미흡한 내부통제를 이유로 CEO 제재까지 이어지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손 회장은 지난해 2월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이 집행 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1심 판결 선고 때까지 금감원이 손 회장에게 내린 징계 효력은 정지돼 왔다.
금감원은 이번 결과를 놓고 신중한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판결 직후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판결문을 입수한 후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서도 “판결문이 입수되는 대로 세부내용을 파악하고 금융위원회와 협의 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의 결과는 앞으로 하나은행 등 줄줄이 남아 있는 사모펀드 관련 제재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이어 불거진 라임펀드나 옵티머스펀드 사태 등도 DLF와 마찬가지로 '내부 통제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현재 금감원은 손 회장 소송 외에도 같은 내용의 행정소송이 2건 더 남아있다.
당장 손 회장과 비슷하게 DLF 관련 지배구조법 위반 적용받은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예정된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것이 유력해졌다.
라임·옵티머스 관련 제재를 받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문책경고), 박정림 KB증권 각자대표(문책경고),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직무정지)도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우리은행의 라임 펀드 판매와 관련해 손 회장은 또 지난 4월 금감원의 문책경고를 받았고,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각각 경징계인 주의와 주의적 경고를 받은 상태다.
금융위는 이런 금감원의 금융권 CEO 중징계 러시에 대해 이번 행정소송 1심 판결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감원도 제재 수위를 조정하지 않겠냐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이 지난 6일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 아닌 지원”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금융업계는 정 신임 금감원장이 윤 전 금감원장과는 다른 정책 기조를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