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는 2001년 롯데 입단 후 대부분의 경기에서 4번 타자로 나섰다. 국가대표에서도 오랫동안 4번 타자를 맡았다. 그가 일본이나 미국에서 활약할 때도 ‘거인의 심장’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렸다. 이대호가 영원할 줄 알았던 4번 타순과 작별한 건 사실 꽤 오래됐다.
이대호가 마지막으로 4번 타자로 출전한 경기는 5월 9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이다. 허문회 전 롯데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은 날이었다. 이대호는 래리 서튼 감독이 부임한 뒤 한 번도 4번 타순에 들어간 적이 없다. 허문회 전 감독 시절에는 131타석 모두 4번으로만 나섰으나, 5월 11일 이후엔 3번(83타석)-6번(52타석)-5번(7타석) 타자로 나섰다. 그가 지켰던 4번 타순엔 정훈·안치홍·전준우 등 후배들이 나서고 있다. 이대호는 “서튼 감독님이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에 따라가야 한다. 난 후배들이 편하게 야구를 하도록 돕는 역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타순이 바뀌었어도 이대호는 이대호다. 그는 지난 2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홈 경기에서 결승 홈런을 쏘아 올렸다. 3번 지명타자로 나선 그는 2-2로 맞선 7회 말 무사 1루에서 바뀐 투수 홍건희의 시속 145㎞ 직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롯데는 4-2로 이겼다.
이대호의 후반기 페이스가 상당히 좋다. 8월에 치른 13경기에서 타율 0.340, 5홈런, 12타점을 기록 중이다. 월간 타율 8위, 홈런 공동 1위, 타점 공동 4위다.
이대호는 5월 18일 한화전에서 홈런을 때린 뒤 내복사근 부분 파열로 팀을 이탈했다. 한 달 만에 돌아온 그는 6월 타율 0.216, 7월 타율 0.200으로 부진하다가 휴식기에 타격감을 되찾았다.
이대호의 위력은 기록으로 입증된다. 팀 내 홈런(15개) 1위다. 부상 탓에 64경기에만 나서고도 팀 내 2위 정훈(11개, 86경기)보다 홈런을 4개 더 때렸다. 장타율도 롯데에서 유일하게 5할(0.504)을 넘는다. 타점은 전준우(56개, 92경기)보다 불과 1개 적은 2위(55개)다. 이대호는 2018년 타율 0.333, 37홈런, 12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2019년에는 타율 0.285, 16홈런, 88타점에 그치며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타율 0.292, 20홈런, 110타점으로 기대에는 못 미쳤다. 이대호의 시대가 끝나가는 듯했다.
그는 최근 활약으로 올 시즌 3할 타율(0.301)에 복귀했다. 현재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앞선 두 시즌보다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다. ‘국민 타자’ 이승엽이 마흔 살이었던 2015년 올린 성적(26홈런-90타점)을 넘어설 수도 있다. 이대호는 “1982년생 동기인 김태균(전 한화 이글스)과 정근우(전 LG 트윈스)가 은퇴했다. KBO리그에 1982년생은 추신수와 김강민(이상 SSG 랜더스), 오승환(삼성)이 남아 있다. 나이가 많다고 야구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대호에게 남은 목표는 우승이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건 이대호가 수영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1992년이다. 이대호는 지난 2월 롯데와 2년 총액 26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했다. 내년까지 뛰고 은퇴한다. 이대호는 “야구 선수로 유일하게 남은 꿈은 롯데의 우승이다. 이제 2년 남았다”고 했다. 이번 FA 계약에는 우승 인센티브를 매년 1억원씩 포함하기도 했다.
이대호는 공수 교대 때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 후배들을 맞이한다. 경기 중 포수를 맡을 선수가 없자 갑자기 마스크를 쓴 것도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원중·구승민 등 젊은 투수들에게 “얻어 맞더라도 고개 들어라. 항상 당당하게 다녀라”고 용기를 심어준다. 이대호는 “이젠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것보다 후배들이 잘해서 이길 때 기분이 더 좋다”고 말했다. 4번 타자에서 물러난 노장이지만, 이대호는 여전히 롯데의 ‘거인’이다. 기록이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