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신호에서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타임 100)’을 선정했다.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는 그 중 상징적인 인물을 꼽는 ‘아이콘’ 카테고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메이저리그(MLB)를 넘어 전 세계 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타로 발돋움했다는 증거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2·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오타니와 아메리칸리그(AL) 최우수선수(MVP)를 다투는 유일한 경쟁자다.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오타니와 ‘괴수의 아들’ 게레로의 야구 전쟁은 지금 MLB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둘은 야구 천재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레로의 아버지는 선수 시절 ‘괴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다. 타격, 수비, 주루, 장타력을 모두 갖춘 수퍼스타였다. 올스타에 9차례 뽑혔고, 2018년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아들에게 이름뿐 아니라 야구 재능까지 고스란히 물려줬다.
오타니도 스포츠 가족 출신이다. 게레로 같은 수퍼스타는 없지만, 아버지와 형이 사회인 야구를 했고, 어머니는 배드민턴, 누나는 배구를 했다. 그의 큰 키(192㎝) 역시 가족의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가 1m82㎝, 어머니가 1m70㎝, 형이 1m87㎝, 누나가 1m68㎝로 모두 장신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형과 캐치볼을 했던 오타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시속 110㎞의 강속구를 던졌다.
오타니와 게레로의 대결 1라운드는 MLB 홈런왕 경쟁이다. 16일까지 게레로가 홈런 45개로 1위, 오타니가 44개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40홈런 고지는 오타니가 먼저 밟았다. 오타니는 지난달 19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시즌 40호 홈런을 터트렸다. 그가 선발 투수로 등판해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경기였다. 게레로도 지지 않았다. 최근 15경기에서 오타니가 홈런 3개로 주춤한 사이, 6개를 몰아치며 맹추격했다. 결국 지난 14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45호 홈런을 쳐 오타니를 추월했다.
2라운드는 시즌 종료 후 결판이 난다. 홈런왕 레이스보다 더 흥미진진한 AL MVP 대결이다. 누가 승리하든 MLB 역사에 두고 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타격 성적만 놓고 보면 게레로가 우세하다. 홈런뿐 아니라 타율(0.317), 출루율(0.406), 장타율(0.611), 득점(116점) 모두 리그 1위다. 타점(103점)은 공동 3위지만, 1위 살바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 로열스·110타점)와 큰 차이가 없다. 트리플 크라운(타율·홈런·타점 1위)이 가시권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한창 마이너리그에서 성장 중일 22세 나이에 리그를 평정했다.
이런 성적으로도 리그 MVP를 확신할 수 없는 건 야구 만화 주인공 같은 존재 때문이다. 오타니는 올 시즌 타율 0.254, 94타점, 91득점, 출루율 0.356, 장타율 0.599를 기록하고 있다. 모든 지표가 게레로에 못 미치지만, 발은 훨씬 빠르다. 도루 23개를 해내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무엇보다 오타니는 현대 야구에서 불가능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선발 투수로도 21경기에 등판해 9승 2패, 평균자책점 3.36을 기록했다. 115와 3분의 1이닝 동안 잡아낸 삼진이 136개다. 앞으로 1승을 추가하면 1918년 베이브 루스(13승·홈런 11개) 이후 103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와 홈런을 동시 달성한 선수로 기록된다.
타임지에 오타니 소개글을 쓴 알렉스 로드리게스(전 뉴욕 양키스)는 “루스조차 시속 161㎞ 강속구를 던지면서 홈런 40개 이상, 도루 20개 이상을 한꺼번에 해낸 적은 없다. 오직 오타니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힘과 맥스 슈어저의 투구 기술, 트레이 터너(이상 LA 다저스)의 스피드를 모두 갖춘 선수”라고 극찬했다.
홈런왕의 향방은 아직 예측할 수 없다. 최근 페이스가 떨어진 오타니보다 물 오른 게레로 쪽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MVP는 다르다. 미국 언론의 표심은 오타니에게 쏠려있다. 뉴욕타임스는 게레로의 45호 홈런 소식을 전하면서 “트리플 크라운은 눈앞에 왔지만, MVP는 아직 아니다. 오타니는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실제로 MVP 투표인단은 홈런·타점 수보다 종합적인 팀 기여도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2012년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도 MVP를 놓쳤다. 주루와 수비에서 마이크 트라우트(에인절스)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