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신인 투수 배동현(23)은 지난 5일 대전 두산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올 시즌 15경기 만에 얻어낸 값진 수확이었다.
경기가 4-3으로 끝나고 팀 승리가 확정된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한 친구의 이름을 떠올렸다. 2019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투수 김성훈(전 한화).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기쁨을 함께 나눴을 동반자다.
배동현과 김성훈은 경기고에서 함께 야구를 한 동기생이다. 배동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서로 이름 정도는 알고 지냈다"며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집도 가깝고 성격도 잘 맞는 걸 알게 돼 아주 친해졌다"고 떠올렸다.
고교 졸업 후엔 잠시 다른 길로 갈라졌다. 김성훈은 신인 2차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직행했다. 내야수였던 배동현은 프로 입성에 실패해 한일장신대에 진학했고, 투수로 포지션을 바꿔 새 출발 했다.
그럼에도 둘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 녹록지 않은 프로 생활과 투수 전향의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늘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1군 무대에 선발 등판해 공을 던지는 김성훈의 모습은 막 투수를 시작한 배동현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배동현은 "나도 꼭 프로에 가서 친구와 함께 활약하겠다"고 거듭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 희망은 끝내 이뤄질 수 없게 됐다. 2019년 11월 23일,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마무리 캠프를 마치고 부모를 만나러 광주로 갔던 김성훈이 건물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프로 데뷔전을 치른 지 1년 4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 앞만 보고 달려가던 배동현은 망연자실했다. 절치부심 끝에 가능성을 인정받아 2차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았지만, 친구와 함께 뛸 기회가 영영 사라진 안타까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운명처럼, 김성훈이 생전 몸담았던 팀에 입단하게 돼 더 그랬다.
배동현은 한화 유니폼을 입기 전 "앞으로 성훈이 몫까지 내가 잘해내겠다"고 결심했다. 김성훈의 등 번호였던 61번을 자신의 번호로 골라 유니폼 뒤에 새겼다. 배동현은 "내가 61번을 선택한 건 오직 친구 때문이다. 성훈이만 생각하면 여전히 남다른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성훈은 2년간 25경기에 등판했지만, 데뷔 첫 승은 올리지 못하고 하늘로 갔다. 배동현도 첫 14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한 채 고전했다. 하지만 결국 '그 순간'이 왔다. 2021년 10월 5일, 배동현은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친구의 등 번호를 달고, 친구가 남겨 놓고 간 꿈을 함께 이뤘다.
배동현은 "(첫 승을 하고 나니) 성훈이와 함께했던 시절이 많이 생각난다. 하지만 내가 성훈이 몫까지 잘 해내려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 앞으로 더 많은 공을 던지고, 더 좋은 투수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