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옥희가 19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한국 여자 골퍼들이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200승을 합작하는 데 33년 7개월이 걸렸다. 24일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고진영(26)의 우승으로 200번째 승리를 거두기까지 ‘LPGA 1세대’의 역할이 컸다.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한 1세대는 미국, 유럽, 일본 선수들과 경쟁을 이겨내고 한국 여자 골프의 힘을 보였다.
1999년 미국에 진출한 김미현(44)도 그중 하나다. 작은 체격(키 1m53㎝)에도 근성 있는 플레이로 ‘수퍼 땅콩’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그는 LPGA 투어 통산 8승을 거뒀다. LPGA 투어에 진출했던 한국 골프의 한 축을 담당한 그는 2012년 은퇴 후 인천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미현은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이 200승을 거둔 건, 내가 데뷔했을 땐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다.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22년 전을 떠올리면서 “LPGA 진출 초기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사우스 코리아? 노스 코리아?(남한? 북한?)’라고 물어봤을 만큼 우리에 대해 몰랐던 선수들이 많았다.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 존재감이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우승은커녕 한국 선수들이 그렇게 많이 미국에 진출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이런 발전이 놀라울 뿐”이라고 흐뭇해했다.
박세리, 김미현 등 미국 진출 1세대 골퍼 대부분은 국내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도전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이 없으니 모든 걸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미현은 “어딜 가도 어색했다. LPGA 무대에서 난 이방인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향수병이었다. 대회마다 부친이 운전하는 미니 밴을 타고 대륙을 누볐다. 그는 “집보다 숙소 생활에 익숙해졌다. 시즌 중 새로운 집으로 이사갔을 땐 자다가 깨서 놀란 적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집에 정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미현은 데뷔 첫해 스테이트 팜 레일 클래식과 베시 킹 클래식에서 2승을 달성했다. 그리고서 LPGA 투어 신인왕에 올랐다. 지고는 못 배기는 악바리 근성으로 그는 2007년까지 LPGA 투어에서 우승을 다투는 골퍼로 활동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10승을 이루지 못한 건 아쉽다. 하지만 평생 1승도 못한 선수도 있는데, 모든 조건을 봤을 때 복 받은 것 같다.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미현 은퇴 후에도 한국 여자 골프는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김미현은 “우리 위에 선배들이 있었기에 LPGA 1세대가 있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있었기에 100승, 200승이 이어졌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선수층이 두꺼워졌다. 대회와 상금이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골프가 대중화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미현은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 대해 “요즘 친구들은 즐기면서 투어 생활을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생각과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며 “앞으로도 유망주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럴수록 (현재 활약 중인) 골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계속 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골프 전체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김미현은 “예전엔 골퍼가 완전한 운동선수처럼 보였지만, 요즘은 연예인 같은 느낌이 든다. 팬덤도 생기고, 패션도 좋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더 프로페셔널 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기, 외모 등 외형적인 면에 집착하는 것보다 실력, 인성 등 내면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는 골퍼가 많아지기를 당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