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 보유액이 23억 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억만장자 찰스 멍거가 한 대학교의 기숙사 건립 비용으로 2억 달러(약 2300억원)를 쾌척하고도 전방위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멍거는 워렌 버핏의 동료로도 알려져 있다.
‘아마추어 건축가’를 자처하는 멍거는 비용을 댄 기숙사의 설계에 깊이 관여했는데, 이 기숙사 방에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CNN비즈니스 등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간)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UCSB)이 멍거가 참여한 11층짜리 기숙사 건물 ‘멍거 홀’의 설계를 승인했다. 이곳은 연면적 15만8000㎡로 학생 4500명이 거주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 기숙사다.
학생들을 호텔에 투숙시켜야 할 정도로 공간 부족에 시달리던 대학은 “압도적으로 놀랍다. 훌륭하고 저렴한 주거 공간”이라며 설계의 효율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안팎에서 이에 동조하는 의견을 찾기 어렵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UCSB에서 설계평가위원으로 15년간 일해 온 건축가 데니스 맥패든은 설계 승인에 항의하는 의미로 아예 사퇴서를 제출했다. 맥패든은 대학에 보낸 서한에서 “학생들을 11층 건물의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 쑤셔 넣는다. 전적으로 인공조명과 기계식 환기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건축가로서, 부모로서, 한 인간으로서 멍거 홀의 기본 콘셉트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기숙사 건립 프로젝트 관련 공청회의 속기록을 보면 한 학생은 “젊은이들한테서 항상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며 “신선한 공기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멍거 홀의 기숙사 방을 ‘독방’으로 표현하며 “학생들이 우울증에 걸려 자해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뉴요커’의 건축 비평가인 폴 골드버거도 “기괴하고 역겨운 농담 같은 설계라면서 기숙사로 가장한 감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멍거 본인은 이런 비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기숙사는 그 어떤 다른 대안보다도 잘 작동할 것”이라며 “방에는 ‘가상 창문’이 설치될 것이다. 학생들이 손잡이만 돌리면 인공조명을 조절할 수 있다. 낮 시간대나 해질녘 시간이 방에 펼쳐진다. 살면서 태양 빛을 조절해 봤는가. 여기선 그게 된다”고 설명했다.
멍거는 현역 건축가들과 함께 이 기숙사를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도 비판과 상관없이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UCSB의 대변인은 “건립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CNN 보도에 따르면 멍거는 기숙사 건립 프로젝트에 2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자신의 설계를 반영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기숙사의 총 건립 비용은 약 10억 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기숙사는 2025년 개관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