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며, 안정적으로 흐르나 싶던 가상자산 시장이 여전히 출렁이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를 악용한 사건·사고가 눈에 띄게 늘고 있고, 내년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가상화폐 과세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어서다. 코인 투자자들은 혼란스럽다.
오징어 코인 등 밈코인 '먹튀'…투자주의보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열풍을 등에 업고 출시된 '오징어 게임 코인'이 코인당 2861달러(약 337만원)까지 치솟았다가 5분 만에 0.00079달러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징어 코인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대표적인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요소)코인'으로, 넷플릭스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이 코인은 개발자가 드라마의 온라인판 게임 토너먼트의 참가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코인이라고 소개하며 24시간 만에 거의 2400%로 가격이 뛰어올랐다.
하지만 가상화폐 개발자가 이 코인을 모두 현금으로 교환해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명 '러그 풀(rug pull)' 사기를 저지르면서 '휴짓조각'이 됐다.
최근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기존의 유명 밈을 따서 내놓는 코인들이 히트하면서 경쟁적으로 밈코인이 출시되고 있다.
지난달 싱가포르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이름인 '아미'를 연상시키는 '아미 코인'이 발행됐지만,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에 따르면 이 코인은 방탄소년단과 전혀 무관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밈코인이 등장한 적이 있다. 진돗개를 모티브로 한 '진도지 코인'이다.
지난 5월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띄운 시바이누를 모티브로 한 '도지코인'이 히트를 치자, 국내에서는 '진도지 코인'이 나온 것이다.
이 코인은 단숨에 150% 상승했으나 개발자가 코인 출시 하루 만에 물량의 15%를 한꺼번에 매도한 뒤 잠적했다.
밈코인이 아니어도 가상화폐를 악용한 사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20대 남성이 가상화폐 투자를 유도해 6억원을 챙긴 사건이 발생했고, 한 50대 남성은 개당 7원짜리 가상화폐를 100원에 파는 사건도 있었다.
또 지난 7월에는 2조원대 사기 혐의로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 등 4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거래소 회원 가입 조건으로 600만원짜리 계좌를 최소 1개 이상 개설하도록 해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회원 5만2000여 명으로부터 2조2100억여 원을 입금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79곳이 보유 중인 94개 집금계좌(벌집계좌) 가운데 11곳이 위장계좌였던 사실이 금융당국에 의해 적발된 적도 있다.
한 30대 가상화폐 투자자는 "용돈 벌이로 금액이 작은 잡코인에 투자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인이 거래소에서 빠지진 않을지, 사기는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며 "먹튀 같은 사기에 대해 정부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갑수 자본시장연구위원은 자본시장연구원 개원 24주년 온라인 세미나에서 “정부는 가상화폐 수익에 대해 과세의 전제조건으로 거래자 보호와 재산권 보장이 상당한 수준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불만', 거래소 '부담'…가상화폐 과세 유예 검토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가상화폐 거래대금은 3584조198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연간 거래금액 529조3159억원의 6.7배에 이르며 같은 기간 코스피 거래금액 3125조8638억원과 비교해도 450조원 이상 많다. 추세대로면 올해 말 가상화폐 거래금액은 45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과세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시행되는 가상화폐 과세의 핵심은 1년 이익이 250만원을 넘을 경우 20% 넘는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2000만원을 주고 산 코인을 3000만원에 팔 경우 양도 차익은 1000만원이고, 여기서 250만원을 뺀 750만원의 22%인 165만원 정도를 세금으로 걷겠다는 얘기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가상화폐는 거래소 간 코인을 이동하기도 하고 해외 거래소를 통해 산 경우에는 처음 구매가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소수점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세부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확인할 수 없는 코인의 구매가는 0원으로 산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즉, 투자자가 최초 구입 가격을 입증하지 못하면 되판 금액 전부가 양도차익으로 계산돼 과세한다는 뜻이다.
이에 한 코인 투자 커뮤니티에는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려면 주식처럼 안정화된 시장을 만들어줘야 할 것 아니냐" "당장 두 달 앞인데 아직도 정확해진 게 없다" 등 불만이 쏟아졌다.
가상화폐 거래소도 난감해하고 있다. 최근까지 가장자산 사업자 신고를 하기 위해 총 역량을 쏟아부었는데, 당장 두 달 후의 과세 관련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코인이 오가야 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없어야 한다"며 "전산 시스템 개발이나 체제 정비가 확실히 구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난 9월 당·정·청 협의로 2022년 과세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지 두 달도 안 돼 더불어민주당이 태도를 바꾼 것이다.
노웅래 민주연구원장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호 없는 과세 또한 있을 수 없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과세를 1년 유예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역시 “(코인 과세에)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면서 의제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과세를 연기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