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는 올해 한국시리즈(KS)에 올랐지만 선발 투수진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힘겨웠다. 확실한 선발 없이는 두산 왕조는 곧 사라진다.
두산은 KT 위즈와의 KS에선 선발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다. KS에선 두산의 선발 자원은 곽빈(22), 최원준(27), 아리엘 미란다(32) 등 3명이 전부였다. 곽빈은 올해 고작 4승(7패)을 올렸고, KS 무대는 처음이었다. 미란다는 정규시즌 막판 어깨 통증으로 24일 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최원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최원준마저 KS 2차전에서 4와 3분의 1이닝 6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두산이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지난 14일 KS 1차전에 선발로 나온 곽빈을 3일만 쉬고 4차전에 올리는 악수를 둬야 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이대로가 최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KT에는 외국인 원투펀치 윌리엄 쿠에바스(31)와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3)가 건재하고 큰 경기에 강한 소형준(20) 등이 있었다. 9승을 기록한 배제성(25)까지 4선발을 갖추고 대권에 도전했다. KT는 매 경기 선발승을 거두면서 짜임새 있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강철 KT 감독은 "진짜 선발 야구를 가장 중요한 마지막에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기뻐했다.
두산도 한때는 선발 왕국이었다. 김 감독이 지난 2014년 말 지휘봉을 잡고 FA(자유계약)로 왼손 투수 장원준(36)을 영입했다. 구속은 느리지만 제구가 일품이었던 유희관(35)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국내 1, 2선발을 구축했다. 더스틴 니퍼트(40), 마이클 보우덴(35)으로 외국인 최고 듀오까지 가세하면서 '판타스틱4'라고 불렸다. 두산은 2016년 판타스틱4로 KS에서 NC 다이노스를 4전 4승으로 따돌리고 완벽한 우승을 거뒀다.
2018년 장원준이 부진에 빠졌지만, 이용찬(현재 NC)이 15승으로 활약했다. 니퍼트, 보우덴 대신 조쉬 린드블럼(34)과 세스후랭코프(33)가 원투펀치 역할을 맡아줬다. 2019년에는 이영하(24)까지 선발진에 가세해 17승을 올려주면서 쾌재를 불렀다. 지난해에는 이영하의 슬럼프로 구멍 난 선발 한 자리를 최원준이 막아줬다.
하지만 올해는 시즌 초부터 계속 구멍이 났다. 이영하는 전반기 내내 들쭉날쭉해 결국 불펜으로 보직을 바꿨다. 제구로만 버텼던 유희관도 30대 중반이 되면서 힘에 부쳤다. 거기다 외국인 투수 워커 로켓은 팔꿈치 통증으로 완주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두산은 내년에도 선발난을 해결할 비책은 없다. 외국인 투수는 잘 뽑으면 되지만, 국내 선발은 여전히 물음표다. 김 감독은 "이영하는 선발로 잘해줘야 하는 선수다. 곽빈은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선발 왕국 두산이 스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