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투자 큰 손’으로 떠오르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변화와 문화를 주도하는 혁신기업이라는 영광을 되찾기 위한 CJ의 반격이 시작됐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CJ그룹이 그동안 추진하고 있던 투자의 결과물들이 하나씩 공개되며 관심을 끌고 있다. CJ ENM은 지난 19일 이사회에서 ‘라라랜드’를 제작한 미국의 엔데버 콘텐트의 지분 80%를 7억7500만 달러(약 9200억원)를 투자해 인수한다고 밝혔다. CJ ENM에 따르면 엔데버 콘텐트의 기업가치는 8억5000만 달러(약 1조원)에 달한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3일 2023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해 도약하겠다는 중기 비전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바이오 위탁개발생산 기업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를 2677억원에 인수하며 신호탄을 쐈다. 이어 엔터 사업에 9200억원을 투자하며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성장 정체에 직면한 CJ그룹은 과거 혁신기업이라고 자부했던 면모를 되찾기 위해 중기 비전을 제시했다. 이재현 회장도 통렬한 자기 반성을 통해 신성장 동력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회장은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과감한 의사결정에 주저하며 인재를 키우고 새롭게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해 미래 대비에 부진했다"며 “앞으로 CJ그룹은 경향 파악, 기술력, 마케팅 등 초격차 역량으로 미래 혁신성장에 집중하고 이를 주도할 최고 인재들을 위해 조직 문화도 혁명적으로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장 속도가 더뎠던 CJ그룹은 지난해 ‘공룡 플랫폼’ 네이버와의 전략적 협력 파트너십을 맺을 때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CJ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에서 13위로 27위의 네이버에 앞섰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를 의미하는 시가총액에서 한참 밀리며 격세지감을 느껴야 했다.
2015년 말 당시에만 해도 CJ그룹의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등 상장 9개사의 시가총액은 25조7000억원에 달했다. 그해 네이버의 시가총액도 25조원 수준으로 엇비슷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격차가 3배 이상 벌어졌다. CJ그룹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19조558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66조3600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10월 CJ와 네이버가 6000억원의 지분 맞교환 때도 시가총액 상 네이버가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며 주목도를 높였다. 업계 관계자는 “CJ와 네이버의 전략적 협약 당시에 전세가 역전된 시총규모에 혁신기업을 자처해왔던 CJ의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주사 CJ의 주가는 2015년 25만1000원까지 치솟으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21일 현재 CJ의 주가는 8만8600원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떨어진 게 자명한 현실이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컸던 CJ의 문화사업의 경우 사드 배치와 ‘최순실 게이트’ 의혹 등이 겹치며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CJ 계열사 중 가장 덩치가 큰 계열사는 CJ제일제당으로 시총 5조4948억원으로 66위 수준이다. 네이버는 시총 순위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혁신기업인 카카오도 시총 56조6000억원으로 시총 순위 5위를 달리고 있다. CJ는 2023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는 등 중기 비전을 통해 다시 K콘텐트·한류를 이끄는 혁신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계산이다. CJ ENM의 미국 진출은 문화 분야에서 의미 있는 발자취다.
CJ 관계자는 “글로벌 기지 구축을 위해 미국의 콘텐트 관련 업체를 그동안 계속해서 물색해왔다. 엔터기업 에스엠의 인수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엔데버 콘텐트 인수로 글로벌 콘텐트 제작 역량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됐다. CJ ENM은 스튜디오드래곤, 멀티 장르 스튜디오(신설), 엔데버 콘텐트 3대축의 멀티 스튜디오 체제를 갖추게 됐다.
강호석 CJ ENM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동서양 문화권을 포괄하는 초격차 글로벌 메이저 스튜디오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