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최태웅 감독도 놀랄 정도다. 프로 6년차 허수봉(23·현대캐피탈)이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허수봉은 배구에서 보기 드문 고졸 선수다. 2016~17시즌 드래프트에서 1차 3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됐고, 곧바로 현대캐피탈로 트레이드됐다. 최 감독은 마른 체형이긴 하지만, 장신(197㎝)에 탄력을 갖춘 허수봉을 눈여겨봤다. 3시즌 동안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경험을 쌓은 허수봉은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19~20시즌 초반 전역한 그는 드디어 풀타임 주전으로 도약했다.
허수봉의 활약은 '외국인 선수' 급이다. 11경기에서 220점을 올려 득점 6위다. 공격성공률은 서재덕(한국전력)에 이은 2위(56.82%). 어려운 공격인 오픈(3위)과 백어택(4위)도 상위권에 올라 있다. 현대캐피탈 외국인 선수 로날드 히메네즈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허수봉이 그 자리를 메웠다. 지난 시즌만 해도 기복이 심해 최태웅 감독이 "다시 상무 갈래"란 말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에이스로 우뚝 섰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당초 허수봉을 조커처럼 쓰려고 했다. 레프트, 라이트는 물론 센터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메네즈가 다친 동안 라이트로 나섰던 허수봉은 최근엔 레프트로 출전하고 있다. 리시브 성공률(31.07%→35.77%)도 지난해보다 향상됐다.
최 감독은 "시즌 전에는 어떤 포지션을 가든 지금처럼 활약을 할 거라고 예상을 못했다. 외국인선수만큼 기여를 하는 것이다. 나도 많이 놀라고 있다. 히메네즈가 없었을 때도 수봉이 역할이 커서 선방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허수봉의 활약에 놀라지 않는다. 지난달 전역한 이원중은 허수봉과 1년간 함께 군생활을 했다. 그는 '허수봉이 왜 잘하느냐'는 질문에 "잘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잘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만큼의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믿음이다. 허수봉은 "비시즌 때 (세터) (김)명관이 형과 타이밍 연습을 많이 했다. 잘 맞다 보니 좋은 경기를 한 것 같다"고 했다. 김명관은 허수봉의 타점을 살려주기 위해 빠르면서도 높은 토스를 올려주고 있다.
허수봉의 성장에 엄지를 치켜세운 건 최 감독뿐만이 아니다.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허수봉과 임동혁이 외국인 선수 못잖게 잘 하고 있다. 한국 배구를 위해서라도 두 선수처럼 국내 선수들이 성장해야 한다"고 칭찬했다. 외인들에 가려 거포 유망주들의 성장이 더뎌지면서 국제배구 경쟁력이 떨어졌던 걸 짚은 것이다.
현대캐피탈의 리빌딩은 매우 성공적이다. 히메네즈가 부상을 당했을 때만 해도 최태웅 감독은 3라운드까지 목표를 승점 20점으로 세웠다. 하지만 2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이미 18점을 쌓아올리며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허수봉을 비롯해 김선호, 박경민 등 지난 시즌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성장해준 덕분이다.
후반기로 갈수록 현대캐피탈은 더 무서워질 전망이다. 히메네즈가 부상에서 회복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고, 이달 22일엔 전광인이 전역한다. 4년 연속 챔프전(2016~19년)에 올라 두 번 우승한 '막강 현대'의 부활의 중심엔 허수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