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반 수출액이 1억8974만8000달러(약 2256억원·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음반의 연간 수출액은 지난해 1억3620만1000달러(약 1620억원)로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연말까지 수출액 2억 달러의 전무후무한 신기록 달성도 가능할 전망이다.
K팝 음반을 가장 많이 구매한 국가를 보면 일본이 6703만4000달러(약 797억원)로 1위였다. 이어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대만, 태국 홍콩 순이었다. 무엇보다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볼 수 있는 미국의 수출액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12년만 해도 전체 음반 수출액 중 미국 비중은 2.2%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현재 17.1%까지 치고 올라왔다. K팝 한류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중심에서 북미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음원 유통사 지니뮤직의 해외 매출은 2019년 121억원에서 지난해 192억원으로 58.7%나 급증했다. 지니뮤직 측은 “그만큼 해외 플랫폼에서 K팝 음원을 더 많이 듣는다는 이야기”라며 “해외 매출은 올해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미국 음악 시장의 동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빌보드 차트에는 K팝 아이돌이 수시로 오르내린다. 메인 차트인 ‘핫 100’(싱글)과 ‘빌보드 200’(앨범) 진입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만 보더라도 방탄소년단은 ‘버터’(Butter)로 빌보드 ‘핫 100’에서 무려 10주 1위를 차지했고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로도 각각 1위에 올랐다.
다른 K팝 가수로 눈을 돌려도 빌보드 선전도 눈에 띈다. 블랙핑크는 정규 1집 ‘디 앨범’(THE ALBUM)으로 빌보드 200 2위를 기록했다. 트와이스와 있지도 이 차트에서 각각 3위와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에이티즈, 엔하이픈, 몬스타엑스, 블랙핑크 리사, 에스파, NCT 127 등 많은 K팝 스타들이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에 성공했다.
K팝이 이처럼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비결을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K팝이 전방위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보뿐만 아니라 가수의 과거 음악과 음반까지 듣고 구매하는 현상이 나타날 만큼 K팝에 대한 전 지구적인 관심의 확장과 신규 팬덤이 시장에 지속해서 유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글로벌 팬의 유입으로 K팝 콘텐트의 소비가 더욱 활발히,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 대표는 “전 세계인들이 K팝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챌린지’ ‘리액션’ 영상 등으로 프로슈머(소비자 겸 생산자)가 돼 재생산 콘텐트를 만들고 있다”면서 “소속사가 만든 오리지널 콘텐트에서 더 나아가 재생산 콘텐트를 만들고 즐기는 것이 K팝만의 새로운 놀이 문화이자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입소문’을 K팝의 성공 비결로 봤다. 이 교수는 “K팝은 동아시아에서는 20년, 서구에서도 10년 넘게 이미 인기를 끈 역사가 있다”며 “인터넷 미디어를 많이 활용하는 세대는 주류 미디어보다 유튜브, SNS, 틱톡 등을 통해 노래와 퍼포먼스를 직접 듣고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SNS와 유튜브를 통해 퍼지는 게 바로 입소문”이라고 했다. 또 “문화의 축이 기성 미디어에서 유튜브 등으로 옮겨갔고, 그 바뀐 흐름의 수혜자가 K팝”이라고 했다.
K팝의 미국 내 영향력 확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지 TV 출연이다. 영어권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어로 된 노래가 내로라하는 굵직한 방송에 줄지어 나온다. 세븐틴과 트와이스는 음반 출시와 동시에 미국의 유명 음악 방송 ‘MTV 프레시 아웃 라이브’에 출연해 신곡 ‘록 위드 유’(Rock With You)와 ‘사이언티스트’(SCIENTIST)를 불렀다. NCT 127도 미국 NBC 방송의 유명 토크쇼 ‘켈리 클락슨 쇼’에 출연해 신곡 ‘페이보릿’(Favorite)을 선보였다. 블랙핑크의 리사는 국내가 아닌 미국 방송에서 먼저 신곡을 내보냈다. 그는 지난 9월 미국 NBC '팰런 쇼'에서 솔로곡 '라리사'(LALISA) 데뷔 무대를 꾸몄다.
가요 전문가들은 K팝 아티스트가 미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로 현지 출연을 못 하게 된 K팝 가수들이 한국에서 대신 촬영해서 보내주는 영상의 퀄리티가 현지보다 뛰어난 점도 대중적 영향력 확대를 이유로 꼽는다.
미국 현지 출연은 당연히 해당 TV 방송국의 인력과 비용으로 무대를 꾸민다. 한국에서 송출하는 K팝 가수들은 한국 기획사가 비용을 거의 지출한다. 뮤직비디오 세트장 혹은 방송국 스튜디오 등을 빌려 촬영이 이뤄지고, 무대의 질을 높이려다 보니 회당 촬영 비용이 1억∼2억원이나 드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미국 방송사 입장에서는 공짜나 다름없는 비용에 훌륭한 무대가 등장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이돌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K팝 아티스트의 방송 무대는 미국 아티스트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훌륭한 퀄리티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K팝 팬들은 다른 팬덤에 비해 응집력이 강하다. 유튜브 조회 수도 다른 출연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 방송사 입장에서도 K팝 스타를 환영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블랙핑크의 리사가 ‘더 투나잇 쇼 스타링지미팰런쇼’에서 선보인 ‘라리사’(LALISA) 무대 영상의 유튜브 조회 수는 2300만 건이 넘었다. 반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2017년 11월 이 방송에서 부른 ‘뉴 이어스 데이’ 무대 영상 조회 수가 4년간 930만여 건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화력’ 차이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