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테아트로 토를로니아’ 극장에서 펼쳐진 ‘흥보가’ 공연은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탈리아 관객들의 기대로 차고 넘쳤다. 공연 중 젊은 이탈리아 관객들은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는 것처럼 ‘흥보가’의 웃음 포인트에서 웃었고, 박수가 필요한 정확한 순간에 박수로 추임새를 대신했다. 이번 공연에 기립 박수 4번을 받았다. 실시간으로 공연 사진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됐고, 공연 후 사진 요청에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였다.
한 관객은 공연이 끝난 후 “다른 판소리의 스토리도 알고싶다”며, “기다릴 수 없으니, 어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공연 스태프들도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목소리를 냈고, 현지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다시한번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 대사관 관계자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 ‘흥보가’ 이탈리아 3개 도시 순회 공연 이어가
김정민 명창은 이 달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3개 도시 순회 공연을 펼친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이수자인 김정민 명창은 7일 로마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데 이어 피렌체(10일), 베네치아(14일)에서 판소리 ‘흥보가’ 완창 공연을 이어간다. 피렌체 공연은 350석, 베네치아는 188석으로, 현지인의 관심이 높아 이들 공연 역시 ‘꽉 찬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민 명창이 이탈리아에서 ‘흥보가’ 완창을 하는 것은 이번이 두번 째다. 2년 전인 2019년 12월에는 밀라노에서 흥보가를 완창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관객들은 “최고의 무대였다”며 엄지척을 보여줬다.
판소리 완창은 1인 오페라로, 초인적인 체력과 열정이 필요하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무대는 아니다. 패기 넘치는 국악인도 도전했다가, 몇 달간 목이 잠기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명창 김정민이 혼자 오롯이 3시간 이상을 노래한다.
‘흥보가’ 이수자인 김정민 명창은 이 공연을 통해 흥보와 놀보 등 등장인물 15명을 연기하고 노래한다. 1인 15역인 셈이다. ‘흥보가’는 창본집 기준 65쪽, 글자 수로는 3만2764자에 이른다. 이를 프롬프터 없이 달달 외워 고수의 북장단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이번 공연은 그에게도 도전이다. 국악인이 평생 한 번을 하기 어렵다는 판소리 완창을 일주일새 세 차례 연이어 해야 하기 때문이다.
■ 독보적 판소리 완창 무대…K-국악 자신감으로 유럽 공략
지난 8년간 김정민 명창의 완창 횟수는 16회, 연간 두 차례씩을 했다. 이를 통해 판소리 ‘흥보가’와 ‘적벽가’를 대중에게 알려왔다. 이에 대해 평단에서는 “판소리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란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6일 로마에서 국내 언론과 만난 김정민 명창은 “오페라의 본고장이라는 이탈리아에서 우리 전통 음악을 소개하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라며, “이탈리아에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코로나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김정민 명창은 역사적인 이탈리아 릴레이 판소리 완창 무대를 앞두고 부담이나 긴장보다는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자신감 넘치는 미소도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 김정민표 ‘판소리 완창’ 오페라 본향서 화제
당시 밀라노 공연은 관객과 호흡도 맞아 한 몸이 됐다. 한국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추임새로 혼연일체된 무대가 만들어 진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오페라글라스’로 김정민 명창의 미세한 몸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관심이 추임새인 셈이다. 이번 공연 역시 현지 관객들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실 김정민 명창의 완창 무대는 다른 명창과 달리 무대를 백분 활동한다. 제 자리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몸동작으로 활력이 넘치는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페라에 익숙한 이탈리아인이 판소리를 비교적 쉽게 이해하는 것도 그의 활동적인 무대가 도움이 됐을 터. 현지 관객은 “판소리가 오페라의 원조일 수 있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이번 공연은 당시를 기억하는 현지인들에게 K-판소리를 경험하는 환상특급이 되고 있다. 이번 로마 공연 역시 전석이 매진돼 일찌감치 흥행을 예감케 했다. 좌석을 추가 확보해달라는 현지 관객의 요청에 주최 측이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정도였다.
공연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개 영상에는 ‘누가 랩이 서양 음악이라고 했나. 랩은 한국에서 나온 음악임이 분명하다’는 내용의 이색적인 댓글까지 달려 눈길을 끌었다. 김정민 명창의 속도감 있는 창법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 이탈리아 공연에 이어 프랑스 정조준
김정민 명창은 1994년 개봉한 판소리 영화 ‘휘몰이’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그의 무대가 연기력 넘치는 판소리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내 판소리계를 평정한 김정민 명창은 이제 ‘판소리의 세계화’를 바라본다. 2019년 판소리 완창 첫 해외 공연지로 이탈리아를 택한 것도 ‘예술의 본고장’에서 먼저 인정받고 싶다는 ‘오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프랑스에서도 흥보가 완창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성악에 조수미가 있듯 한국 판소리의 ‘프리마돈나’(Prima Donna·오페라의 주역 여성가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는 바로 김정민이라는 자존심과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김정민 명창은 “한국의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듯 이번 해외 공연이 한국 전통 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씨앗을 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분이 국악은 ‘죽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판소리는 아직도 성장 잠재력이 크다”며 “제대로만 알려진다면 순식간에 퍼져서 전 세계에서 만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현지 공연은 철저한 방역 수칙에 따라 진행됐다. 공연장이나 극장 등의 공간에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백신을 접종한 후에만 받을 수 있는 그린패스가 입장 기준이 됐다. 모든 입장관객들은 ‘슈퍼 그린패스’의 지참은 물론이고, 추가로 공연 48시간 이내의 항원검사 결과도 지참해야 공연에 참여 할 수 있었다. 마스크 착용도 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