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 남성이 이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사망자의 소유물 처분 판매)에서 30달러(약 3만6000원)에 건진 낡은 스케치가 르네상스 시대 명화로 인정받았다고 미국 언론들이 25일(한국시간) 보도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남성은 2016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한 이스테이트 세일장에 들러 모조 보석 목걸이를 1달러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작은 그림 한 점을 30달러에 각각 구매했다.
집에 보관해놓고 이따금 지인들에게 보여주던 이 그림을 희귀서적 전문 서점을 운영하던 친구 브레이너드 필립슨이 눈여겨봤다. 그는 그림 아래쪽에 적힌 ‘A.D.’라는 글자가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니셜이라고 추정했다.
이후 2019년 선물을 사러 필립슨의 가게에 들렀다가 이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된 보스턴의 미술품 중개상 클리퍼드 쇼러는 소유주 집에 달려가 그림을 직접 본 뒤 “걸작이거나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위작일 것”이라고 말했다.
쇼러는 소유주에게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의 선금을 지불하고 그림을 입수한 뒤 뒤러의 진품이 맞는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진품이라면 나중에 그림을 팔아 수익금을 나눠 갖는 계약이지만, 만약 뒤러의 작품이 아니라면 선금을 모두 날리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였다.
쇼러의 의뢰로 작품을 감정한 대영박물관 자문위원 제인 매카우슬랜드는 처음에 가짜라고 판단했다가, 뒤러의 그림에서만 보이는 세 갈래 투명무늬를 확인한 뒤 진품 가능성에 손을 들어줬다. 또한 뒤러 전문가인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토프 메츠거를 비롯해 쇼러가 만난 여러 전문가 중 한 명만 빼고 모두 뒤러의 진품이 맞다고 판단했다.
메츠거는 이 그림이 1503년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뒤러는 이 작품처럼 성모 마리아가 풀이 우거진 벤치에 앉아있는 비슷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전문가들은 30달러짜리 이 그림이 수천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추정가가 5000만 달러(약 594억원)라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빈대학 예술역사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프리츠 코레니는 이 그림이 뒤러가 아닌 그의 제자 한스 발둥의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이 경우 뒤러의 작품이라고 전제해서 추산한 가격의 4분의 1 정도만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풀이 우거진 벤치에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이 독일에서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매사추세츠주로 넘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매사추세츠의 건축가 장폴칼리안의 가족이 1912년 이 작품을 사들였으나,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뒤러의 진품이 아니라고 판단해 이스테이트 세일에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런던의 애그뉴스 갤러리에 보관된 이 그림은 내년 1월 뉴욕의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