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막내 구단 KT 위즈는 2021년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8년 만에 리그 최강팀으로 올라섰다. 선수단과 구단 프런트, 베테랑과 젊은 선수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원팀(one team)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KT 챔피언 등극의 두 주역 박경수(37)와 강백호(22)를 만나 뜨거웠던 2021년 레이스를 돌아봤다. 강백호는 정규시즌 타격 5개(타율·안타·타점·장타율·출루율) 부문 5걸 안에 이름을 올리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박경수는 지난달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KS)에서 환상적인 호수비와 결정적인 홈런으로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두 선수는 서로의 퍼포먼스를 한껏 치켜세웠다. 2022년 KT를 다시 통합 우승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Q.2021년에 두 선수 모두 데뷔 첫 우승을 경험했다.
박경수(이하 박)=입단 19년 차에 기적이 찾아왔다. 나는 애써 (우승) 여운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다. 강백호(이하 강)=아직도 축하를 받고 있다. (우승 경험이 많은) 두산 선배 몇 명이 ‘우승 처음 해보느냐’라며 농담하더라. 처음이기에 너무 좋았다. 절친한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형이 가장 많이 부러워했다. Q. 박 선수는 역대 KS 최고령 MVP에 선정됐다. 박=내가 정말 수상할 자격이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3차전에서 당한)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상을 받을 만한) 스토리가 생긴 덕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MVP는 KT팬과 ‘팀 KT’다. 정말 솔직한 내 마음이다.
강=2021년 KS는 (박)경수 선배님이 단연 최고였다. 우리는 2022년에도 통합 우승을 노릴 것이다. 선배님이 2년 연속 KS MVP를 수상하도록 지원하겠다. (역대 KS MVP를 2회 이상 받은 선수는 김용수·이종범·정민태·오승환·양의지 5명이다.)
박=정말 도전하고 싶다. 레전드 선배들과 같은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다. (강)백호가 내년에도 MVP급 활약을 보여준다면 KT의 2년 연속 통합 우승도 가능하다. (강백호는 2021 KBO 시상식 MVP 투표에서 두산 베어스 아리엘 미란다, 이정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강=MVP나 타격왕은 개인의 능력으로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우승은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많아도 해내기 어렵다. 올해 우승은 KT가 해냈고, 정규시즌 MVP를 받은 선수도 우리를 부러워할 것이다.
박=백호는 15년 이상 더 야구를 할 선수다. 우승을 또 할 수 있고, MVP 수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리 다친 박경수와 영화 같은 세리머니 KT의 우승 직후 장면은 마치 영화 같았다. 우승 확정 후 마운드 위에 모인 KT 선수들이 벤치에 있던 박경수와 유한준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손짓했다. 다리 부상 중이었던 박경수는 목발을 짚고 유한준의 부축을 받은 채 느리지만, 힘차게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Q. KT 세리머니가 큰 화제였다. 박=다리가 아픈 상태여서 내가 세리머니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한준이 형이 나와 함께 더그아웃에 함께 있어 줬는데, 후배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너희가 잘해서 형들한테 우승을 안겨줬는데, 왜 또 우리를 주목받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동받았다.
강=경기 전부터 주장 (황)재균이 형이 ‘두 선배가 오시면 그때부터 제대로 세리머니를 하자’고 당부했다.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목발 짚고 오시는 경수 선배님 뒤로 KT팬이 환호하는 모습이 펼쳐졌고, 팀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순간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다.
Q. 눈물을 감추지 못하더라. 박=KS 4차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남겨두고 한준이 형이 어깨를 툭 치면서 ‘고생했다’고 하더라. 그 순간부터 눈물이 나왔다. KT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최하위권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많이 겪었다. 그런 시간을 딛고 해낸 우승이었기에 더 눈물이 났다. KT팬에게 ‘우승팀 팬’이라는 자부심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
강=나도 입단 첫해(2018년) 9위를 경험했다. 당시 멤버들이 함께 성장해 우승까지 해낸 점이 너무 좋았다. 또 KT 팬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체감했다. 감격했다. 그동안 분해서 울어본 적은 있지만, 행복해서 눈물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껌 씹은 강백호, 많이 배운 한해
강백호는 KT가 82경기를 치를 때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9월 타격 슬럼프에 빠졌다. 8월 도쿄 올림픽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는 역전패를 앞둔 상황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껌을 씹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힌 후 야구팬에 큰 비난을 받았다.
Q. 강 선수는 롤러코스터 같은 2021년을 보냈다.
강=더 잘하고 싶어서 (타격) 변화를 자주 시도한 게 독이 됐다. 체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올림픽에서는 무조건 내가 잘못한 것이다. 신중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도 인정한다. 많이 배웠다. 야구팬과 야구계 선배님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다.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지겠다.
박=당시 올림픽에서 돌아온 백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이슈가 너무 커졌다. 그래도 잘 이겨내더라. 백호는 한국 야구에 꼭 필요한 선수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다.
Q. ‘맏형’ 유한준의 은퇴로 KT가 새 출발선에 섰다.
박=많이 의지했던 형이다. 통합 우승이라는 큰 선물을 받고 은퇴하셔서 다행이다. 나는 조금 외로워질 것 같다. 후배들과 한준이 형의 공백을 잘 메워보겠다.
강=좋은 야구 선수의 교본 같은 선배였다. 멋있는 뒷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는 (은퇴를) 축하드리고 싶다. 리더는 너무 힘든 자리인 것 같다. 어떻게 경수 선배님을 도울지 많이 고민하겠다.
Q. 2022년 목표를 전한다면.
강=당연히 KT의 2연패다. 개인적으로는 올해보다 더 잘하는 거다. 매년 ‘나를 뛰어넘자’는 목표를 세운다. 2022년에는 30홈런 이상 치고 싶다.
박=백호는 아직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 않았다. 4할 타율과 홈런 40~50개를 칠 수 있는 선수다. 난 다른 바람이 없다. 오로지 KT의 두 번째 통합 우승이 목표다.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완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