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세터 김하경. [사진 한국배구연맹] IBK기업은행 세터 김하경(26)은 지난 15일 흥국생명과 경기가 끝난 뒤 눈시울을 붉혔다. 3-2 승리를 거두면서 지긋지긋한 8연패에서 탈출하자 감정이 복받쳤다. 같은 세터 출신인 이숙자 해설위원은 "마음을 알 것 같다. 세터는 모든 결정을 하는 위치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했다.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김호철 감독이 다가와 김하경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을 땐 다시 눈물샘이 터졌다. 김하경은 "연패를 끊은 것도 있었고, 드디어 이겼다는 생각도 있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랬다"고 했다. 경기 뒤 김호철 감독은 "우리 하경이는 많이 울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원석이 망치질을 견뎌내고 보석이 되는 것처럼 이 과정을 이겨내고 좋은 세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 감독은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하경이에게 말을 안 할까'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야기하게 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하경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는 김호철 감독(오른쪽). [연합뉴스] 김하경은 2014년 입단한 프로 8년차다. 그러나 지난 시즌까지 기록한 세트(공격으로 연결된 패스) 숫자는 278개에 그쳤다. 주전세터라면 한 라운드에도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입단 이후 늘 백업세터였고, 두 시즌 동안(2017~19년)은 실업팀 대구시청에서 뛴 적도 있다. 올 시즌도 조송화의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조송화가 팀을 이탈하면서 김하경이 주전으로 올라섰다. 그 사이 팀 사령탑도 대행 체제를 거쳐 김호철 감독으로 바뀌었다. 세터는 감독의 전술을 코트에서 수행해야 한다. 김하경은 "경기를 많이 뛰는 건 좋다. 하지만 부담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운동에만 몰두했다"고 했다.
김호철 감독은 현역 시절 명세터였다. 자연스럽게 '호철스쿨'에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는 건 세터 김하경과 이진(21)이다. 특히 주전세터인 김하경은 연습시간 전후로도 30분씩 더 훈련을 할 때가 많다.
김하경은 "프로에서 세터 출신 감독님은 처음 만났다. 그냥 세터도 아니고 명세터 출신이니까 다른 감독님들보다 요구하는 것도 많고, 구체적인 지시도 많다"고 했다. 이어 "좋은 것 같다.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몰랐던 것들도 배우고 있다. 과정 자체가 내게는 좋은 일"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남자팀을 지도하던 시절 선수들을 강하게 이끌어 '버럭 호철'이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기업은행을 맡은 뒤 "예전에는 '버럭 호철'이란 말도 들었지만, 선수들의 말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감독 겸 아빠처럼 팀을 이끌고 싶다"고 했다. 김하경은 "감독님 말씀대로다. 처음에는 선수들도 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는 부드럽게 이야기하신다. 더 신경써주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호철 감독이 온 뒤 기업은행 선수단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어수선했던 예전과 달리 김희진을 필두로 선수들의 투지가 경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고비 때가 되면 패배의 기억이 스믈스믈 기어나와 선수들의 몸을 무겁게 했다.
김호철 감독도 긴박한 경기 중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호통'은 아니지만 따끔한 일침을 했다. 흥국생명전 14-11로 앞선 5세트가 딱 그랬다. 김 감독은 매치포인트를 앞두고 작전타임을 불러 김하경에게 "(산타나 말고)다른 쪽 빼주면 누가 잡아먹어? 이XX야"라고 말했다.
다소 강한 어투지만 과감한 승부를 하라는 지시라는 걸 선수들도 알았다. 베테랑 김수지도 웃음을 터트렸다. 김하경은 "그 장면을 몇 번 다시 봤다"고 웃으며 "감독님 말이 맞다. 누가 잡아먹지도 안는데 왜 그랬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실수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다음 걸 바로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그러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하경은 "울보라고 소문이 났다. 이제는 참으려고 한다"며 "올 시즌은 한 경기라도 더 이기는 게 목표다. 선수로서는 우승 세터가 되는 게 꿈이다. 그때까지 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