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축구는 근래에 들어 어린이, 청소년과 여성들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요 스포츠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축구는 2012년 미국 남자, 여자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팀 스포츠 1위와 3위에 각각 올랐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사커 맘(Soccer Mom)”이란 표현이 미국 영어에 있다. 이들은 도시 교외에 살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헌신적이다. 사커 맘이란 용어도 미니밴이나 SUV를 몰고 학령기의 아이들을 축구 경기에 실어 나르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Soccer is for sissies, kids and girls(축구는 계집애 같은 사내, 어린이와 소녀들을 위한 것이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는 미국에서 주류 스포츠가 되기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다. 여러분이 열렬한 스포츠 팬이라면 “왜 축구는 미국에서 인기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최소한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많이 궁금하지만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운 이 주제. 같이 한번 파헤쳐 보자.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인 미식축구(NFL), 농구(NBA), 야구(MLB)와 아이스하키(NHL), 그리고 나스카(NASCAR, 자동차경주대회) 등이 이미 미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서 축구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는 주장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 특유의 문화 때문이다. 축구에는 미국인의 사회적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많은 측면이 있다.
첫째, 미국인은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를 혐오한다. 이를 반영하듯 NBA, MLB(악천후 등으로 인해 무승부로 끝날 때도 있으나,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와 NHL 경기에 무승부는 없다. 축구에는 동점으로 끝나는 경기가 얼마나 자주 나올까? 가장 인기있는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EPL)의 5시즌(2015/16~2019/20)을 살펴보면, 총 453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 동점으로 끝나는 비율은 23.8%다. 같은 기간동안 전체 경기의 7%가 0-0 경기였다.
미국의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인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첫 시즌인 1996년 축구를 '미국화'하기 위해 아이스하키의 '페널티 슛아웃'과 비슷한 규칙을 도입했다. 동점으로 경기가 끝난 경우 승부를 가리기 위해 선수는 골대로부터 32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공을 드리블해 들어가 5초안에 슛을 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기존 축구팬들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1999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미국인들은 “모두가 이겼어(everybody wins)”나 “얘들아 다 잘했어(you’re all doing great, guys)” 같은 말은 재미로 하는 어린이들 경기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프로 레벨의 경기에서 그들은 승부가 나야 직성이 풀린다.
미국 스포츠 문화에서 무승부는 “두 팀 다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 팀 다 졌다”로 해석된다. 팬들 입장에서도 2~3시간을 투자해서 경기를 봤는데 무승부로 끝난 경우, 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A tie is like kissing your sister(동점은 여자 형제와 키스하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이 미국인들은 무승부를 싫어한다. 이런 미국인들에게 특히 0-0으로 끝나는 축구 경기는 악몽과 같다.
둘째, 미국인은 점수가 많이 나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미국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NFL의 경우 2020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이 49.6이었다. MLB도 지난 20년 동안 경기 당 평균 9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야구 경기의 특성상 관중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점수다. 그에 반해 2020/21시즌 EPL 경기당 평균 득점은 2.7에 불과했다. 따라서 축구는 1~2골만 지고 있어도 경기 막판에 역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막판에 극적인 역전승이 가능한 NBA나 MLB 등과 비교된다.
다득점 스포츠를 선호하는 것은 미국 문화 특유의 '큰 것에 대한 집착'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진 넓은 국토만큼 그들은 큰 것을 선호한다. 큰 자동차, 넓은 거리, 높은 빌딩을 비롯해 미국에서 파는 스테이크, 햄버거도 정말 크다. 운동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성공하려면 키가 커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사이즈에 집착한다.
미국 사회는 또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경제적 원칙을 중요시한다. 즉 미국인은 자신이 가진 제한적인 여가 시간을 가능한 최고로 즐기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2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2골 남짓 나오는 축구 경기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다. MLS는 골대를 넓혀 더 많은 골이 나오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셋째, 축구는 공정하게 시간 계산을 하지 않는다. 후반 정규시간이 끝날 때쯤 대기심이 보여주는 추가 시간은 언제나 3분이나 4분 같은 분 단위로만 주어진다. “정확하게 계산을 했을까?”라는 의심이 안 들 수 없다. 아울러 추가 시간 동안에도 부상, 골, 선수 교체 등의 변수는 계속 생겨, 정확히 언제 경기가 끝날 지 아는 사람은 주심밖에 없다.
복마전 같은 국제축구연맹(FIFA)처럼 축구의 시간 계산은 비밀스럽고 불투명하다. 축구는 가뜩이나 막판에 역전하기 어려운 경기인데, 팬들은 경기 휘슬마저 정확히 언제 울릴지 알 수 없다. 축구의 이러한 특성은 공정성과 극적인 역전 기회를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