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환과 네이선 첸(미국)의 활약으로 주목받은 남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또 하나의 스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피겨 불모지' 멕시코에서 온 도노반 카리요(21)다.
카리요는 10일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했다.
대회의 주인공은 네이선 첸이었다. 완벽한 연기로 하뉴 유즈루를 비롯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대표로 출전한 차준환도 5위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한국 피겨의 새 역사를 썼다.
하지만 카리요의 존재감도 이들 못지 않았다. 카리요는 피겨 불모지로 통하는 멕시코 출신이다. 상하의와 스케이트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얼음 위에 등장한 그는 딘 마틴의’ 스웨이’, 리키 마틴의 ‘마리아’와 같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연기를 선보였다. 이날 싱글 점수 138.44점, 8일 쇼트프로그램 79.69점으로 총점 218.13점을 기록한 그는 전체 2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메달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밝고 유쾌한 웃음을 경기 내내 잃지 않았다. 그는 "연기에 만족했지만,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스케이트를 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다음 대회를 향한 기대를 전했다.
카리요는 이번 올림픽에서 존재만으로도 특별했다. 이번 대회 피겨 종목 유일한 라틴아메리카 선수인 카리요는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한 첫 멕시코인이다. 3피겨 종목에서 30년 만에 나온 멕시코 선수기도 하다.
피겨 불모지에서 피겨를 시작한 이유는 사소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카리요가 8살 때 동생을 따라 동네 스케이트장을 갔다가 리사라는 소녀에게 반해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운동을 계속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종목도 비인기였을 뿐더러 주위의 반응도 싸늘했다. 뉴욕 타임스는 “피겨스케이팅은 소녀들을 위한 스포츠라는 이들은 카리요를 동성애 혐오스러운 시각으로 보며 괴롭혔다”라고 당시 그의 어려움을 묘사했다.
훈련 환경도 좋지 못했다. 올림픽 규모 경기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쇼핑몰에 위치한 작은 아이스링크장에서 소녀들을 가르치며 훈련을 병행했다. 음악을 켜기도 어려웠고 손님들을 피해 훈련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팀의 훈련으로 링크를 절반밖에 못 쓰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럼에도 그는 ‘난 내가 무엇(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올림픽 무대에서의 존재감 덕에 카리요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멕시코를 비롯해 전 세계의 팬들이 소셜미디어서비스(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에는 누구보다 반가운 이름도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오래 전부터 그와 연락이 끊겼던 누군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라며 “그가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만든 소녀, 리사였다. 그는 카리요가 공연을 마친 후 축하한다며 메시지를 보냈다”라고 카리요의 뒷 이야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