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계주의 핵심은 팀워크다. 빠른 속도를 유지하려면 정확한 타이밍에 서로를 강하게 밀어줘야 한다. 톱니바퀴처럼 움직이기 위해선 연습량과 신뢰가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꽤 큰 위기를 경험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공개된 심석희(25·서울시청)의 동료 뒷담화 메시지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팀 모 코치와 나눈 부적절한 대화 내용이 세간에 알려졌고, 그 불똥이 대표팀으로 튀었다. 당시 대표팀은 베이징 대회에 나설 선수들이 확정된 상태였다. 선발전 1~3위를 차지한 심석희·최민정(24·성남시청) 김지유(23·경기 일반)가 개인전과 단체전, 4~5위 이유빈(21·연세대) 김아랑(27·고양시청)이 단체전에 나설 예정이었다. 쇼트트랙은 국가대표 선발전 1~3위가 개인전과 단체전, 4~5위는 단체전 출전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심석희의 대표팀 합류가 불발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21일 열린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상벌위원회) 회의에서 동료를 험담한 행위가 인정돼 2개월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대표팀은 심석희의 이탈에 대비해 선발전 6~8위 서휘민(20·고려대) 박지윤(23·한국체대) 김길리(18·서현고)까지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지유마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다. 김지유는 지난해 11월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 경기 중 넘어져 발목뼈가 부러졌다. 빠르게 몸 상태를 추슬렀지만,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결국 심석희와 김지유를 대신해 선발전 6~7위였던 서휘민과 박지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개인전만큼 우려되는 건 단체전이었다.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심석희 사건으로 시끌벅적했던 지난해 10월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에선 김아랑-김지유-박지윤-서휘민이 출전해 3위를 기록했다. 1위 중국과의 차이가 2초 이상이었다. 심석희가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최민정마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계주 종목에 불참한 영향이었다. 대표팀은 월드컵 2차 대회에선 2위, 최민정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3차 대회에선 결승전 4위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설상가상으로 월드컵 4차 대회에선 실격으로 처리됐다. 최민정-김아랑-이유빈-서휘민이 첫 호흡을 맞췄지만, 국제 대회 경쟁력에는 물음표가 찍혔다. 계주 멤버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기 어렵고, 심석희 징계를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가 꾸준히 나오면서 대표팀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2014년 소치와 평창 대회에 이어 종목 3연패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하지만 최민정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대표팀은 13일 세계 최강 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여러 가지 악재를 극복하고 포디움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유빈은 경기 뒤 "좋지 않은 상황에서 훈련했다. 이 4명이 연습한 기간이 짧다면 짧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라고 말했다. 서휘민은 "원래 올림픽에 오는 멤버가 아니었는데 갑작스럽게 오게 됐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공을 돌렸다. 대표팀 맏언니 김아랑은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일 때 높이 난다는 말처럼 힘든 상황에서 흔들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단단해져 이런 성적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