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화려하게 빛나진 않았지만, 베이징에서의 올림픽 라스트 댄스를 멋있게 마무리했다.
한국은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 메달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 최근 들어 인기가 높아진 피겨 스케이팅과 컬링까지 빙상 종목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에서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선수들도 많다. 비록 올림픽에서 입상하진 못했어도, 한국 동계 스포츠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는 베테랑도 있다.
루지 임남규(33)는 불굴의 의지로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이후 은퇴를 한 임남규는 대한루지경기연맹의 설득으로 다시 썰매를 탔다. 지난해 12월 독일에서 열린 국제루지연맹(FIL) 월드컵 6차 대회를 준비하다 정강이뼈가 보일 정도의 큰 부상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귀국 사흘 만에 8차 대회가 열리는 라트비아로 출국, 붕대를 감고 썰매에 올라 기적처럼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번 대회 남자 1인승에서 34명 중 33위를 기록했고, 팀 계주에서는 14개 팀 중 13위에 자리했다. 메달과 거리가 멀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할 때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올림픽 라스트 댄스'를 만끽했다.
올림픽에서 레이스를 마감한 그는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이제야 꿈에서 깨어나는 거 같다. 루지를 보시는 분들에게는 제 경기 모습과 결과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사실 겁도 났다"며 "여러분들이 저를 진정한 올림피언으로 만들어 주셨다. 감사한 마음 평생 잊지 않겠다"라고 인사했다.
대한민국 루지 대표팀의 아일린 프리쉐(30)도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다. 푸른 눈과 금발의 프리쉐는 독일에서 태어나 2016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4년 전 대회에서 한국 루시 사상 최고 성적인 8위를 기록했다. 2019년 양손과 허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큰 수술을 받은 뒤 기량이 떨어졌지만, 재활 끝에 베이징행 티켓을 획득했다. 손톱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한국 사랑'을 표현했다. 그는 이번 대회 1인승 경기 4차 시기에서 썰매가 뒤집혀 떨어졌지만 기어코 완주에 성공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34명 중 19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인 그는 "공부를 마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불혹을 넘긴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역사 이채원(41)도 마지막 레이스를 감동적으로 마무리했다. 1996년 데뷔해 2020년 전국 동계체육대회 금메달 78개를 딴 이채원은 이번이 6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 출전 횟수나 나이 모두 이번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많다.
이채원은 지난 10일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10㎞ 클래식에 출전해 34분45초5의 기록으로 98명의 출전선수 중 75위를 기록했다. 순위를 떠나 레이스를 끝까지 마친 점이 돋보였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해발고도 1720m의 쉽지 않은 코스. 100% 인공눈에 유달리 언덕이 많아 전성기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코스를 이채원은 끝까지 완주해 냈다.
비록 마지막 올림픽에서 메달은 없었지만 그 어떤 마무리보다 멋진 '라스트 댄스'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