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김광현(34)의 연봉 협상은 장기전이었다. 1월 15일 미국 플로리다로 스프링캠프를 떠날 때까지 미계약 상태였다. 당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재계약 대상자 45명 중 연봉 계약을 하지 않고 캠프를 시작한 건 김광현이 유일했다. 연봉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면 대체로 파열음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더 달라는 선수와 더 줄 수 없다는 구단이 맞서면 연봉 조정까지 가기도 한다. 하지만 김광현의 상황은 달랐다.
당시 SK는 의도적으로 연봉 협상을 미뤘다. 이는 김광현에게 '비FA(자유계약선수) 최고 연봉'이라는 훈장을 달아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연봉 라이벌' 양현종(KIA 타이거즈)과 최형우(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계약이 발표되면 "두 선수가 받는 연봉보다 100원이라도 더 주겠다"는 게 구단 방침이었다. 실제 SK는 1월 12일 양현종이 비FA 역대 최고 연봉 타이 7억5000만원(87.5% 인상)에 사인한 뒤에도 "최형우의 계약까지 기다릴 수 있다"며 꿈쩍하지 않았다.
김광현의 연봉 계약이 마무리된 건 캠프가 진행 중이던 1월 27일이었다. 전날 최형우의 연봉이 7억원(16.7% 인상)으로 확정되자 SK는 비FA 역대 최고 연봉 8억5000만원(41.7% 인상)을 안겨 에이스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김광현은 "SK에 입단한 후 구단에서는 늘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향상심이 생긴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김광현은 2019시즌이 끝난 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SK는 김광현이 없던 2021년 3월 SSG로 인수, 재창단됐다. 구단명과 유니폼, 마스코트도 바뀌었지만 그를 최고라고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함없다. SSG는 지난 8일 김광현과 4년 총액 151억원(연봉 131억원, 옵션 20억원)에 계약했다. 151억원은 이대호(롯데 자이언츠·4년 150억원) 나성범(KIA·6년 150억원)이 세운 KBO리그 역대 계약 총액 최고액을 1억원 웃돈 신기록이다.
SSG의 김광현 영입전은 속전속결이었다. 7일 류선규 SSG 단장이 김광현의 에이전트를 만나 물꼬를 텄고 같은 날 계약에 합의했다. 일찌감치 '국내 최고 대우'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 불필요한 줄다리기를 피했다. 류선규 단장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151억원은 미국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KBO리그에서 할 수 있는 최고 대우"라며 "(현실적으로) 200억원을 줄 순 없으니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베스트'라고 얘기했다"고 협상 뒷이야기를 밝혔다.
김광현은 KBO리그 통산 136승 2홀드 77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에이스로 영입하면 확실한 전력 인상 요인이다. 하지만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이번 겨울 SSG는 비FA 다년 계약으로 투수 박종훈(5년 65억원)과 문승원(5년 55억원) 외야수 한유섬(5년 60억원)에게 큰돈을 투자했다. 연봉이 27억원인 추신수까지 더하면 네 선수의 2022시즌 연봉 총액만 85억원. 삼성 라이온즈 연봉 상위 28명의 연봉 총액(88억9500만원)과 큰 차이 없었다.
하지만 SSG는 과감하게 지갑을 열어 김광현에게 '최고 대우'라는 훈장을 또 한 번 달아줬다. 김광현은 "구단이 KBO리그 최고 대우로 내 가치를 인정해줘서 친정팀 복귀를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다.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하루빨리 팀에 복귀해 SSG가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