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프로축구 울산현대 안방 울산문수경기장에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포트FC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몸을 푸는 울산 선수들 사이에 축구화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챙겨 입은 홍명보(53) 울산 감독이 눈에 띄었다.
홍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최소한 홈에서만큼은 경기 당일 정장을 고수하겠다”면서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 설명한 바 있다. 시즌 초반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은 이유는 최근 프로축구 무대에 급속도로 확산 중인 코로나19 때문이다.
울산은 경기 하루 전 바이러스 폭격을 맞았다. 선수단 내부에 확진자가 대거 등장해 엔트리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를 합쳐 20명 가까운 인원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이날 경기에 불참했다. 울산 선수단 중 가용 인원은 골키퍼 3명 포함 15명이 전부. 지난해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은 플레잉코치 이호(38)와 2002년생 막내 최기윤(20)까지 등록해 17명 엔트리를 간신히 채웠다. 특히나 2선 공격수 윤일록(30)이 측면 수비수 역할을 맡을 정도로 수비진 붕괴가 심각했다.
홍 감독이 경기 전 훈련에 참여한 건 필드코치들도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울산 선수들은 홍 감독의 지시를 받아 워밍업, 스트레칭, 패스, 미니게임 등 미리 정한 훈련 일정을 소화했다. 마무리 훈련에서는 홍 감독이 밀어주는 볼을 받아 슈팅 감각을 조율했다. 울산 관계자는 “감독님이 부임한 이후 경기 당일 팀 훈련을 도운 것은 물론, 정장을 벗은 것조차 처음”이라며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걸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경기 내내 벤치에 앉지 못한 채 선수들을 독려한 홍 감독은 경기 후 “오랜만에 선수들의 워밍업을 도울 수 있어 좋았다”면서도 “벤치에 앉는 코칭스태프 숫자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다.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에 승리(3-0)할 수 있었다”고 안도했다. “코로나19는 사회 전체의 어려움이며 우리 팀만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그는 “팀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 두렵다”고 덧붙였다.
앞서 농구장과 배구장을 덮친 코로나19는 K리그에 빠른 속도로 스며드는 중이다. 울산뿐만 아니라 FC 서울도 15일 실시한 자가진단 검사에서 다수의 선수들이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타 팀들 중에도 확진 판정을 받아 핵심 선수들을 제외하고 경기를 치른 경우가 적지 않다.
K리그의 코로나19 대응 역량은 시즌 초반 순위 경쟁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다음달 개막을 앞둔 프로야구에도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와 관련해 프로축구연맹이 코로나19 대응 기준을 좀 더 촘촘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검사 결과 팀 당 출전 가능 인원이 최소 17명 이상(골키퍼 1인 이상)이면 경기를 정상 진행한다’는 현행 규정이 코로나19 오미크론의 전파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